형, 저 어제 새벽에 천사의 집으로 CPR(심폐소생술 출동) 나갔다 왔어요.
아침 교대점검을 하는데 이전 근무팀 구급대원이 말했다. 천사의 집은 센터에서 약 5킬로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한 요양원이었다.
그런데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요.
문을 안 열어줘? CPR인데?
네. 한 5분 기다렸나. 그러니까 열어주더라고요.
돌아가셨겠네.
돌아가셨죠.
DNR(소생술 유보: 사망 시 소생술을 받지 않을 것임을 고지하는 것) 받았던 거 아냐?
그래서 물어봤어요. DNR 받았냐고.
그랬더니.
며칠 전에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네요.
그걸 어떻게 믿어.
제 말이요.
천사의 집 문이 열리지 않았던 5분 동안 노인이 요양보호사들로부터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자기들 말로는 DNR을 받아놨기 때문에 아예 손 놓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직접 보질 못했으니 그 5분 동안, 아니 119에 신고한 시각부터 본격적인 CPR이 이루어지기 직전 십여 분간 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알 길이 없었다. 동료와 얘기하면서 일전에 이곳 요양원 팀장이라는 사람과 말다툼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코 끝이 아릿해지는 냄새가 났다.
전자도어록이 해제되며 유리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밤공기가 요양원 내부로 들이치자 가라앉아 있던 악취가 사방으로 퍼졌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헛구역질이 났다. 노인들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 옷을 제때 갈아입히지 않아 썩은 땀이 섬유에 들러붙었다 증발하면서 나는 냄새, 젖고 말리고를 반복한 기저귀 냄새. 마치 이곳이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임시 안치소라고 주장이라도 하는 듯한 냄새였다.
요양원 팀장은 무슨 모임이라도 하다가 급한 환자 때문에 불려 나온 모양새였다. 깔끔한 재킷에 면바지 차림이었고, 화장이 너무 진해서 몸 위로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녀가 열이 가라앉지 않는 노인이 있는 방으로 우릴 안내했다. 노인을 옮기기 위해 모로 누이고 그 아래 들것을 밀어 넣었다. 등허리에 붙은 누렇게 변색된 반창고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욕창이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노인을 구급차에 실었다. 그런데 요양원 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 입구에서 제 승용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서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이 내려가며 뚱한 얼굴이 나타났다.
왜요.
구급차 타셔야지요. 저희가 환자분 정보가 없잖아요.
그냥 실어다 주기만 하면 돼요.
구급차 타세요.
불편해서 싫어요. 그 한마디에 내 속에 있던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환자가 짐짝이에요? 요양원에서 이러는 거 보호자들도 알아요? 그러자 팀장은 결국 차에서 내려 씩씩대며 구급차에 올랐다. 대충 병원에 던지고 올 생각이었는데, 그러고선 제 차를 타고 서둘러 모임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저놈의 융통성 없는 소방관 때문에 일을 망쳤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 팀장 말대로 노인만 구급차에 싣고 갔어도 큰 문제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땐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토할 것 같았다.
올여름은 비가 많이 내렸다. 뭐에 화가 났는지 정말 세상을 쓸어버릴 것처럼 내렸다.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 언젠가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소방서로 모 종교단체에서 포교를 나왔다. 그들은 먹을 것과 함께 다육식물을 작은 화분에 담아 나눠주고 갔다. 빗줄기를 뚫고 돌아가는 신도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묵시록적인 이미지가 연상되어 문득 묻고 싶었다. 교주님을 믿으면 천사를 만날 수 있나요. 아니면, 거기에도 천사는 없고 천사의 집만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