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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31. 2023

죽어도 사는 법

 텃밭 한쪽은 고구마를 심었다. 요즘은 물 먹은 볕이 사우나처럼 온 땅을 뒤덮어서 줄기가 사방으로 뻗쳤다. 고구마는 안 자라고 줄기만 크는 것 같아 조금 염려가 되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 좋다. 줄기를 끊어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고구마 줄기를 한 다발 끊어와서 거실에 펼쳤다. 그리고는 겉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건 이만큼 가져다 볶으면 딱 이만큼 나와.

 안 줄어요?

 응. 그래서 좋아.

 껍질을 꼭 벗겨야 하나.

 안 벗기면 질겨서 못 먹어.

 손질하는 걸 지켜보던 둘째가 달라붙더니 저도 따라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여리여리한 손가락이 꼭 색깔만 다른 고구마 줄기 같았다. 처음엔 느렸는데 점점 속도가 붙었다. 재밌는지 과자 먹고 하라고 불러도 몰랐다. 완전한 몰입 상태. 나중에 공부 잘할 것 같다는 기대를 조금 했다. 더 갖다 줘. 둘째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여태 손질한 것 절반만큼을 더 가져다 또 껍질을 벗겼다.


 예전에 엄마는 어떤 요리의 레시피나 재료 손질법 같은 걸  알려주지 않았다. 사 먹어. 아니면, 해다 줄게. 딱 두 가지 대답이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물어보면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메모를 해서 알려줬다. 엄마들이 다 그렇지만 딱히 정해진 방법으로 요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이 기억하고 혀가 기억하는 걸 문자로 옮기느라 시간이 걸렸다.

 고구마 줄기 볶음도 최근에야 요리법을 전수받았다. 손질한 고구마 줄기를 소금 한 수저 넣어 삶은 뒤에 식히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들기름에 다진 파, 마늘, 멸치액젓 넣어 후루룩 볶아낸다. 세상 간단하지만 모르면 그냥 모른 채로 살았을 것이다. 엄마가 그때 어떻게 만들었더라? 하다가 영영 잊어버렸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따로 레시피를 남겨두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한 두해 전까지도 직접 명절 음식을 준비했고, 돌아가시기 직전엔 분가한 아들 딸 식구들 몫으로 만두를 한 보따리씩 빚어 놓았다. 다 자기 손으로 만들려고만 했지 전수를 하는 일엔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약간 검은빛이 돌았던 소고기 뭇국이나, 뼈째로 부쳤던 동태 전, 짜지만 자꾸 손이 갔던 강된장찌개 맛을 재현해 낼 길이 없다. 엄마는 아마 사라진 외할머니의 맛을 천국에서 다시 지상으로 가져올 수 없다는 데 대한 아쉬움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뭐 만드는 법을 물어보면 메모까지 해서 알려주려는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엄마 보고 싶어지면 요리 하나 뚝딱 만들어서 뻥 뚫린 마음을 채울 수 있게 하려고.


 이제부터라도 아이들 잘 먹는 음식은 따로 만드는 법을 적어둬야겠다. 혹 타고난 요리 똥손이라도 레시피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신랑이 만들어 주기라도 하겠지. 그래서 나 없는 날엔, 아빠가 한 거랑 맛이 똑같아. 하고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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