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Aug 05. 2023

어렸을 땐 똑똑했어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처럼 우리 엄마 아버지도 내가 천잰 줄 알았더란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달이 차를 쫓아온다고 말했을 때나, 영어로 십일이 일레븐이면 십이는 이레븐이라고 말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단다. 공부도 꽤 잘했다. 중학교 땐 몇 번인가 전교 1등을 해서 어른들이 우리 집안에서 법조인이 나오겠구나, 외교관이 나오겠구나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교회를 다니는 엄마의 기도문엔 아들이 유능하고 정직한 지도자로서 세상에 귀감이 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높은 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굽어보는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언젠가부터 공부를 잘 못했다. 차 사고가 난 뒤로 허리디스크가 터지는 바람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였을 수도 있고, 아픈 김에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소설책에 빠진 탓일 수도 있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 꽃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똑똑한 나는 아주 희미한 잔상만 남아서 때때로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건드렸다. 친한 친구 하나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한 뒤 잘 나가는 연구원이 되었고, 다른 친구는 대학병원 교수가 되어 한 달에 천만 원은 우습게 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즈음 나는 자칭 예술을 하고 있었다. 연극판과 영화판을 쫓아다녔다. 그러면 나 빼고 여전히 똑똑한 친구들에게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난 건 소방서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다. 정확히는 구급차를 타면서부터다. 현장에서 마주한 무수한 삶과 죽음은 똑똑했던 나를 뿌리째 흔들어 뽑아버렸다. 대신 마음속에 다른 무언가가 싹트기 시작했다. 인내, 용기, 연민, 사랑, 어느 한 단어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똑똑한 사람들이 코웃음 치는, 세상의 가장 깊고 낮은 자리에 숨어 있었다.



 

 1월 초의 어느 날, 세 들어 사는 남자가 아프다는 신고를 받았다. 날씨는 삐친 우리 와이프처럼 추웠다. 출동하려고 시동을 거는데 구급차가 컹컹컹컹 기침을 했다. 한참을 달려도 히터에선 찬바람만 쏟아졌다. 현장에 도착할 즈음에야 겨우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집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그것도 월세로 살았다. 철로 된 문고리에 손을 대자 습기를 먹은 니트릴 장갑이 쩍 달라붙더니 손바닥이 통째로 뜯어졌다. 문을 열었다. 집 안은 바람만 들이치지 않을 뿐 냉동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얀 런닝 셔츠에 삼각팬티만 입은 남자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었다. 길게 자라 떡이진 머리 안쪽에서 흐리멍덩한 두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손발톱은 길게 자라다 못해 매의 그것처럼 아래로 휘었다.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옷가지 사이사이로 남자가 싼 똥이 얼음이 돼서 굴러다녔다.


 어렸을 땐 똑똑했어요.


 뒤따라온 집주인이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남자의 집 벽을 따라 늘어선 선반엔 이름 있는 책들이 빼곡했다. 국가. 자본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꿈의 해석. 파우스트. 정의란 무엇인가. 등등. 등등. 그토록 똑똑했던 남자가 광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얼까 궁금했다. 그의 부모가 원인이었는지, 산더미처럼 쌓인 책이 원인이었는지, 어쩌다 신이 실수로 설계한 운명이 원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를 보아 온 집주인은 무언가 알고 있었겠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똑똑했던 그의 과거보다 곧 얼어 죽을지 모르는 지금이 중요했다. 바닥에 구겨져 있는 옷가지 중에 두터운 것들을 골라 남자에게 입혔다. 체온이 조금 낮은 것 외엔 문제가 없어 집주인에게 일단 난방부터 하고 상태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썩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심 구급차로 실어다 어디 정신병원에라도 입원시키길 바랐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남자는 지구의 가장 춥고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아마도 월세를 받기 위해 때때로 방문을 두드리는 집주인만이 그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구급차를 타지 않았다면, 내내 똑똑해서 꿈꾸던 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 남자를 보고 뭐라 말했을까. 패배자. 구제불능. 아까운 세금을 축내는 밥버러지. 어쩌면 입에 담을 가치도 못 느껴서 침이나 한 번 뱉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릴 때 이후로 더는 똑똑하지 못한 덕에 나는 그 남자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고, 나와 같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본래 옳은 일이란 걸 깨달았다.

 

 똑똑한 나는 더 이상 나의 찬란했던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그럴싸한 빈 껍데기였고, 벗어나지 못했다면 죽는 날까지 내 눈을 멀게 했을 위험한 길잡이였다. 똑똑한 내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난 살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