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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28. 2023

엄마라는 이름의 열차

 

 침대 옆자리가 허전해서 눈을 뜬다. 아내가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를 찾는다. 안방에 붙은 화장실에도, 애들 방에도, 종종 앉아서 얼굴 마사지를 하는 작은 방에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건다. 벨소리를 따라가 보지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전화기만 있을 뿐이다. 이건 그거다. 두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습관. 당신이 노곤한 나를 침대에 두고 홀로 답답함을 해결하는 방법. 창 밖을 본다. 여름이라 일찍부터 날이 밝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경련한다는 신고를 받았다. 지난밤에 이어서 이틀 연속 세 차례나 구급차를 부른 사람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이 엄마가 축 늘어진 아이의 등과 허벅지를 양 팔로 받쳐 안고 있었다. 아이는 6살이라 했지만 키가 작고 말라서 4살 중에서도 작은 아이처럼 보였다. 올해로 두 번째 만나는 밀러-디커 증후군이었다. 대부분 2세 이전에 사망하고 오래 살아도 10세를 넘기지 못하는 무서운 유전질환이었다. 아이 엄마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늦은 나이에 가진 아이라 더 귀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엄마에게 남은 시간보다도 많지 않았다.


 엄마는 병원 앞에서 1시간쯤 대기하다가 응급실 출입구를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사라진 아이의 시간을 돌려내기라도 하란 것처럼 울분을 터뜨렸다. 그 앞에는 보안 요원도, 간호사도, 구급대원도 없었다. 응급실 당직의가 부랴부랴 구급차로 다가와 아이를 진찰했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안 들여보내고 뭐 했냐고 괜히 트리아제(환자분류) 간호사를 타박했다. 엄마는 부서질 것 같은 예술 작품을 대하듯 아이를 안고 병실로 향했다. 뱃속으로 눈물을 삼키느라 새빨개진 코를 하고 있었다.


 얘는 원래 죽었어요.


 80대 노모가 구급대원들을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그녀는 1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들을 홀로 돌보고 있었다. 남자의 여동생이 있었지만 자기 살 궁리 하기도 빠듯했다. 그래서 좁고 더러운 임대주택에 두 사람만 남았다. 무슨 일로 신고하셨어요. 물었지만 가는 귀가 먹은 노모에게선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의자 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해 아이스크림처럼 밑으로 밑으로 흘러내리는 아들에게 대신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어써여.

 병원 안 가실 거예요?

 앙가여. 말을 하기 무섭게 남자의 엄마는, 이노무 새끼가 안 가길 왜 안 가! 가! 하고 없는 힘을 쥐어짜 소릴 질렀다. 다른 말은 하나 못 알아들으면서 아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건 다 알아들었다. 나나 아내가 자다가도 아이들 잠꼬대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건 아이들이 신생아였을 때부터 이어진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노모는 그 습관을 60년이 넘도록 이어오고 있었다.


 응급환자가 몰려서 병원 앞 대기가 길어졌다. 남자의 엄마가 손때가 꼬질하게 묻은 천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선생님, 이걸로 점심 식사라도 하세요.

 어머니, 그거 집어넣으세요. 저희 공무원이라 돈 받으면 큰일 나요.

 그래요?

 네.

 그런데요, 선생님.

 네?

 저희가 수급자라서 늦게 들어가는 건가요.

 그런 거 아녜요. 응급실은 급한 환자부터 들여보내요. 그래서 그래요.

 네에.

 그 말마디에 내 안에서 뜨끈한 게 치밀었다. 시간이 가난한 두 사람을 얼마나 무정하게 대했는가가 훤히 보였다. 노모는 똥이 마렵다는 아들의 기저귀를 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사다 드린다고 말을 해도 굳이 다리를 절며 병원 매점으로 향했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이따금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 어어 하는 답이 돌아왔다. 답이 없으면 더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 또 어어, 답이 돌아왔다. 움직이지 않는 아들의 손을 매만지면서 엄마는 내내 울었다. 하도 눈물을 쥐어 짜서 마른 논처럼 갈라진 얼굴이 거기 있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발갛게 물든 두 뺨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전화를 들고나가지.

 불편해서 걷기 힘들어.

 말이라도 하고 나가. 걱정 돼.

 걱정은 무슨.

 하고 나가.

 아우, 알았어.

 핀잔을 주거나 말거나 아내는 표정이 밝다. 오랜만에 산책이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우리는 커피를 타서 나눠 마시고, 서로 눈을 보며 시답잖은 대화로 아침을 연다.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인다. 옷을 입힌다. 머리를 묶인다. 아이들 준비를 마치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걸친다. 당신은 오래 입어서 너풀거리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 그뿐이지만, 등굣길의 여느 엄마들보다 화려하지 않은 보통의 엄마지만, 움츠러들지 않는다. 엄마라서 당당하다. 나는 그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의 열차다. 한 번 출발하면 갈아탈 수도, 쉬어갈 수도 없는 열차. 나는 그 아래 곧게 뻗은 선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낡을지언정 열차에 실린 아이들을 바다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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