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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31. 2023

국밥의 온도차

 야간 근무가 끝나가는 아침, 퇴근 직전에 출동이 걸렸다. 편의점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였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거니 쓰러진 사람에게서 술냄새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시계는 오전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인 한 분이 반듯한 자세로 누워 편의점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단정하게 빗은 짧은 백발, 흰색 반팔에 마찬가지로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푸우, 푸우 얼큰한 숨을 뱉는 얼굴 위로 선글라스까지 얹었다. 선생님, 좀 일어나 보세요. 예상외로 한 번에 정신을 차렸다. 머리 뒤쪽으로 상처가 있나 살피기 위해 노인을 부축해 편의점 간이 테이블 의자에 앉혔다. 별 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어.

 아니, 대체 언제부터 술을 드신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마셨지.

 대단하시네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마셨어요. 댁이 어디세요?

 담배 한 대 줘 봐.

 저 담배 안 태워요. 댁이 어디세요?

 에이, 씨, 담배 한 대 줘 봐, 임마.


 잠시 뒤, 경찰차 한 대가 편의점 가까이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 좋아 뵈는 경찰이 노인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구, 영감님, 저 아시죠?

 담배 한 대 줘 봐.

 예예, 여기요. 경찰이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여줬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이 분 집주소 저희가 알아요. 모셔다 드릴 테니까 소방관 분들은 들어가셔요. 내 일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찝찝했지만 감사히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밤샌 뒤라 조금 피곤한 탓도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목례를 하니 선글라스를 낀 채 담배를 피워 문 영감님이 어서 들어가란 듯 휘휘 손을 저었다.


 이날 저녁엔 아이들이 시골집에 놀러 가서 아내와 둘만 남았다. 오랜만에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 하기로 했다. 늘 그런 것처럼 나는 매운 국밥을 곱빼기로, 아내는 안 매운 걸 보통 사이즈로 시켜 먹었다. 한참 수저를 놀리는데 출입문이 열렸다. 아니, 열리려고 했다. 아주 느린 템포로 기이이이이이이이익 소릴 내며 열렸다. 손이 아니라 몸으로 문을 밀고 들어오는 남자가 거기 있었다. 40대 초반으로 뵈는 남자는 금테 안경에 양복까지 차려입었다. 좀비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빼면 보통 이상으로 멀끔한 모습이었다. 내가 여기 병원(국밥집 근처 대학병원) 의사야. 남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주문을 받으려는 아르바이트생을 앞에 세워두고 못 알아들을 소리를 웅얼거렸는데,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문제였다.

 나 저런 거 처음 봐. 아내가 말했다.

 처음 본다고?

 응.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아니, 저런 사람을 처음 본다고?

 응. 왜 자꾸 물어.

 나는 오늘 아침에도 보고 왔거든. 매일 봐, 저런 거.

 정말?

 어.


 수년간 술 취한 사람은 하도 많이 봐서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취해 남의 가게가 떠나가라 소리치는 사람을 처음 본다니. 내 입장에선 그런 아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밥 먹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아서 신경을 끄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의사 선생님이 국밥집에 출현한 뒤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전화기를 들어 112에 신고를 했다. 전화를 마친 시점에 국밥집 주방 안 쪽에서 사장님이 걸어 나왔다. 인상은 푸근하지만 덩치가 나보다도 큰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친절한 미소로 다가가 의사 선생님의 팔짱을 끼더니 그대로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 십 분쯤 뒤에 가게로 혼자 돌아왔다. 경찰이 때마침 도착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


 겨우 술 취한 사람들 때문에 출동하는 게 썩 기분이 좋진 않다. 어쩔 땐 화도 난다. 하지만 만취한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밥을 못 먹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출동을 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사라진 뒤, 아내는 평소처럼 맛있게 국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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