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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15. 2023

소방관도 인정한 불맛

 돌아가신 외할머니 살던 동네엔 오래된 고깃집이 하나 있다. 근방엔 나름 이름이 난 곳이라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한 번을 못 갔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론 부러 이 동네를 잘 안 와서 더군다나 가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어제 외삼촌이 고깃집으로 우리 식구들을 불렀다. 외할머니 혼자 사시던 집을 곧 처분할 예정이라 도배 겸 집정리를 하는 중에 저녁 먹자고 부른 것이다. 고깃집에서 이십 여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가게 앞에서 삼촌이 다리가 짧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오래된 의자처럼 삼촌도 원래 거기 있던 오래된 풍경 같았다.


 아이들에겐 외삼촌 할아버지가 최애 친척 중 한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조개껍질로 목걸이도 만들어 주지, 낚시도 데려가지, 콜라도 마시게 해 준다. 그래서 외삼촌 할아버지를 만나자마자 두 놈 다 질세라 다리에 매달렸다. 외삼촌은 한 놈씩 들어서 담이 낮은 오래된 주택 안쪽을 구경시켜 줬다. 거기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했다. 삼촌이 담배 태우던 자리 옆에서 고깃집 사장님이 숯에 불을 붙이고 계셨다. 벌겋게 단 드럼통 안쪽에서 숯이 씻씻거리며 타올랐다.


 테이블은 옛날 대폿집처럼 둥근 형태로, 가운데에 숯이 들어가게끔 얕고 넓게 파여 있었다. 잠시 뒤, 사장님이 철제 쓰레받기에 숯을 담아 들어오셨다. 보통 고깃집처럼 화로를 통으로 놓는 게 아니라 가운데 패인 부분에 숯만 넓게 펼쳤다. 어디 펜션에 놀라가면 바비큐 그릴에 담아주는 숯과는 차원이 달랐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 하나 없이 희고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불길이 꼭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냄새도 좋았다. 뜨겁고 상쾌한 나무 향이 훅 끼쳤다. 고기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벌써 보는 맛이 났다. 여보쇼, 얼른 고기 한 점 올려서 잡솨봐. 숯이 말을 거는 듯했다.


 고기는 고기 망에 올리자마자 표면이 매끈하게 익었다. 원체 화력이 좋은 데다 일정하게 온도가 유지되는 덕이었다. 숯불 구이를 하면 십중팔구 망에 고기가 들러붙어서 검게 타는 부분이 중간중간 생기는데 이곳은 그런 게 없었다. 맛이야 말해 뭐 할까. 화력 덕에 질척이지 않고 완벽하게 육즙을 가둔 고기맛은 애들이 더 잘 알았다. 첫째는 굳이 고기 먹은 일을 일기에다 적을 정도였다. 애들 포함 여섯 사람이 갈매기살 8인분인가 9인분인가를 먹었다. 된장 라면 두 개와 밥 두 공기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3인분은 더 먹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여운이 남았다. 고기도 고기였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타오르던 숯불이 인상 깊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도 숯불처럼 한결같이 뜨거워야 하리란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다 곧 그게 나에 대한 과신이란 걸 깨달았다. 애초에 숯불 같은 부모는 잘 없다. 대개는 아이들을 키우다 한 번씩 성질을 부리고, 저가 피곤하면 달려드는 아이들을 귀찮아한다. 뜨겁다 식었다 제멋대로다. 오히려 아이들이 숯불 같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원하고, 또 부모를 사랑하길 원한다. 아이들의 뜨거운 사랑이 날 것 같던 부모를 잘 익혀서, 사람답게 만든다. 사실은 아이가 부모를 기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한 잔 들어갔겠다, 갑자기 춤이 추고 싶어서 Tiesto의 클럽 믹스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생하고 매트 위에서 리듬을 탔다. 둘째가 슬며시 다가왔다. 우리는 발은 구르지 않고 서로 양손을 붙든 채 엉덩이가 네 개가 되도록 흔들었다. 내가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그 뒤로도 아이는 한참 동안 불 같이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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