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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19. 2023

결혼하는 내 아내에게

 마침내 그날이 왔네. 사느라 바빠 늘 화장기 없던 당신 얼굴에 고운 신부 화장을 하는 날. 당신은 지금껏 이렇게 떨리던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떨고 있을 거야. 치렁치렁한 웨딩드레스가 불편해서 더 떨고 있을지 몰라. 새로 만나는 식구들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겠지. 걱정하지 마. 알지? 자주 얘기해주지 못했지만 당신은 정말 예뻐. 사랑스러워.


 당신에게 더 좋은 남편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한 걸 매일 후회해. 그랬다면 당신이 좀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도 쉬이 이겨내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남아. 어쩌겠어.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순 없어.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알면서도 잘해주지 못한 옛날을 곱씹는 중이야. 이렇게 미안해라도 하면 당신이 좀 더 행복한 마음으로 식장에 들어설까 싶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중이야.


 당신이 결혼하려는 남자는 모지리야. 서른 하나가 되도록 뭐 하나 이뤄 놓은 것도 없고, 돈도 없어. 앞으로 2년은 더 방황해서 당신 맘고생을 시킬 거야. 그러다 첫째 딸이 세상에 나와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뜬금없이 소방관 시험을 보겠다고 할 거야. 그렇게 공부한다고 일 년은 더 당신에게 독박 육아 겸 시집살이를 시킨 뒤에 비로소 독립을 할 거야. 작은 전셋집이지만 괜찮아. 그때부터는 그 남자가 밥을 하기 시작하니까. 그것도 완전 건강식으로. 처음엔 어설프지만 날이 갈수록 나아져. 한 5년쯤 지나면 식당서 먹는 것보다 집밥이 맛있어질 거야. 그러다 보면 당신은 점점 예뻐질 거야. 밥도 맛있지,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아이들 키우면서 마음의 그림자도 점점 사라지지. 솔직히 당신이 지금처럼 예뻤다면 나란 사람한테 눈길이나 줬을까 싶을 정도로 예뻐질 거야. 며칠 전인가는 정말 놀랐다니까. 이렇게 예쁜 사람이 정말 내 마누라인가 싶어서.


 우리는 오늘 8번째 결혼기념일이라 맛있는 식당을 예약했어. 유행하는 오마카세인가 하는 건데, 인당 삼만 오천 원짜리 식당을 예약했다고 얼마나 타박을 받았는지 몰라. 가면 또 맛있게 잘 먹을 거면서. 대충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좋아. 이렇게 결혼기념일도 챙기고, 결혼기념일 아닌 날에도 여전히 손 잡고 한 이불 덮고 입을 맞춘 뒤에 잠들어. 내가 사실 우리 와이프를 많이 좋아하거든. 장담하는데 결혼하던 그날보다 훨씬 더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 당신 곁에 있는 남자가 조금 뚱해 보일지 몰라도 너그러운 맘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어. 그 남자는 뚝배기 같은 사람이니까. 천천히, 점점 더 뜨거워져서, 오래오래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야.


 결혼 축하해. 멀리서나마 당신이 행복하길 바랄게.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


 

 2023년 9월 19일

 8년 전 오늘, 결혼하는 내 아내에게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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