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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10. 2023

악마의 집

 (다소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침밥이 늦었다. 애들은 서둘러 입에 밥을 욱여넣는다고 고생이고, 뜨거운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는 우리 부부는 입천장이 데서 고생이다. 이빨 닦으라고 말을 해도 장난감 가지고 논다고 오늘따라 더 말을 안 듣는다. 어찌어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이는데 빗이 엉킨 머리를 쓸고 내려가는 순간 첫째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른다. 내 잘못인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도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는다. 그런데 먼저 머리를 묶은 둘째가 보이지 않는다. 현관 쪽에서 찬 바람이 분다. 둘째가 현관문을 열어 몸으로 받치고 문 아래 도어 스토퍼를 손가락으로 고정시키려고 낑낑대고 있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문 아래로 끼어들어가는 장면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나는 날듯이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무섭게 다그친다. 이거 손으로 내리면 안 돼, 다신 하지 마. 저는 식구들이 나오기 쉽도록 애를 쓴 건데 혼이 나서 억울한지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래도 내 입에선 같은 말만 나온다. 다신 하지 마.


 우리가 사는 집은 3층이지만 엘리베이터는 1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11층에서 한 번 멈추고, 7층에서, 4층에서 또 한 번 멈춘다. 우리 차례다. 엘리베이터에 아이들을 끌고 들어가는데 둘째가 미처 타기도 전에 문이 닫히려 한다. 찰칵찰칵찰칵찰칵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누군가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누르고 있다. 나는 손바닥으로 닫히는 문을 억지로 연다. 찰칵찰칵찰칵 소리 나는 쪽을 부러 쳐다보지 않는다. 봤다간 분명 싸움이 날 것이다. 마침내 로비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진다. 성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덩치 큰 초등학생들이 욕지거릴 하며 내린다. 씨발 답답해. 빨리 나가 개새끼야. 존나 미친. 저들끼리 떠드는 건지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불러 세워서 한마디 하고 싶지만 나 없을 때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애들한테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아서 참는다. 첫째가 묻는다. 아빠, 씨발이 뭐야. 어, 하면 안 되는 말이야. 저 오빠들은 왜 해. 집에서 엄마 아빠가 하나 보지


 첫째는 엄마 손을 잡고 학교로 가고 둘째는 나와 함께 유치원에 가기로 한다. 출근하는 차들이 아파트 단지 내 도로를 경주용 서킷이라도 되는 양 내달린다. 차가 뜸하게 지나는 틈을 타 겨우 단지를 빠져나온다. 아파트 후문을 지나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나서 쳐다보니 뚱뚱한 남자 둘이 자동차 시동을 걸어 놓고 시시덕대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남자들의 시선이 둘째에게 꽂힌다. 아이를 안아 올린다. 아이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나쁜 의도야 있겠냐마는 그냥 안 쳐다봤으면 좋겠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아이의 얼굴을 흘긋거리며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분이 나쁘다. 뚱뚱한 남자들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유치원이 코 앞이다. 그리고 유치원 건물 근처엔 바로 그 집이 있다. 죽음의 집 또는 악마의 집. 악마가 살았던 집. 지인을 불러서 잔인하게 살해하고 토막 낸 남자가 살던 집. 소방서에 들어온 첫 해인가 두 번째 해에 그 사건이 터졌고, 우리 센터에서 출동을 나갔다. 남자는 흉기로 여자의 복부를 수 차례 찌른 뒤 머리를 몸통과 분리시켰다. 심폐소생술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마주칠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근처를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늘 보니 집은 새로 하얗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누가 집을 사들인 모양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 꺼림칙하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꼼꼼히 몸을 씻은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살인자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아이를 유치원 선생님 손에 맡긴다. 몇 해를 봐서 안심이 될 법도 한데 늘 불안하다. 옆집 악마가 심심풀이 삼아 유치원에 숨어들 것만 같다. 아이들의 입을 더럽히고, 선생님들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조리대에 숨어 호시탐탐 불을 낼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것 같다. 눈을 떠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악은 어느 곳에나 입을 벌리고 있다. 어쩌면 내 안에도 숨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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