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찾으러 가는 길에 길은 없었다. 빗물에 뭉쳐서 죽이 된 낙엽에 발이 푹푹 빠졌다. 내 발이 남기고 간 자취가 길이라면 길인데, 그 길은 뒤로만 뻗었고 앞으로는 흔적이 없었다. 사람 사는 거랑 다를 게 없었다. 과거는 또렷한데 미래는 막막했다. 그래서 희망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겠지.
GPS 값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산행이었다. 2시간 여를 헤맨 끝에 시신과 그 곁을 지키고 있던 신고자를 발견했다. 날이 푹해서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썩은 내가 났다. 신고자는 사냥을 하던 중에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남자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남자의 재킷 안주머니를 뒤졌다. 지갑과 함께 반으로 접은 편지지 한 장이 나왔다. 물을 먹어 잉크가 번지는 바람에 일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강 이렇다. 나가 죽으라고 해서 죽는다. 혼자 잘 살아라.
배우자의 말마디는 돛 가까이 부는 바람이다. 칭찬과 격려가 순풍이 되는 반면 저주와 원망은 역풍이 된다.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 말하면 인생은 그대로 수평선을 향해 뻗지만, 나가 죽으라 말하면 바다에 거꾸로 처박히는 기분이 들고 실제로 침몰하기도 한다.
상처 주는 말이 남기는 건 상처뿐이듯 사랑의 말이 남기는 건 사랑뿐이다. 그러므로, 계속 사랑할 생각이라면 오로지 사랑을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