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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20. 2022

그녀와 커피를 마시고 올 걸 그랬다.

녹슨 연통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콘크리트와 목재를 대충 얽어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이었다. 바닥부터 처마까지 위태롭게 쌓인 땔감이 집의 전면을 뒤덮고 있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여성의 목소리로  '화재경보, 화재경보, 화재경보.' 하고 건조한 톤으로 되뇌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 소리들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섬찟함이 조금 가셨다.


 한 뼘 남짓한 좁은 마루 건너 안방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계세요?" 하고 몇 번인가 소리쳤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보일러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쪽방 문을 열었다. 뜨끈한 열기가 담긴 회색 연기가 훅 끼쳤다. 외벽과 구들장에 균열이 생겨서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 동시에 확연히 뚜렷해진 경보음. 마른침을 삼키고 마악 발을 들여놓으려는데, 어둑한 연기 너머로 무언가 움직였다.


 "누구세요?"


 "119에요. 소방서에서 왔어요."


"누구라고?"


 문지방을 넘어 할머니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온통 주름에 뒤덮여서 마치 이목구비가 그 안에 파묻힌 듯한 인상이었다. 작은 키가 강낭콩처럼 굽어서 더 작아 보였다.


 "소방관이에요."


"누구라고?"


  어지간히 귀가 어두운 듯했다. 목소리를 높여 방구석에서 정신없이 울리고 있는 경보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서 소방서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할머니, 어디 아프신 데는 없어요?"


 할머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느릿한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서 경보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군불 때서 그래요. 안 나오셔도 되는데......" 하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 주름에 파묻혀서 겨우 눈동자만 드러나는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할머니와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 허파가 꽉 죄어오는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입을 떼었다.


"연기가 이렇게 차면 위험한데, 누구 없나요? 혼자 계세요?"


"...... 아무도 없어요."


생각 없이 주워섬긴 말에 할머니가 맥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차 싶어서 "할머니! 불 때실 때 환기 한 번씩 하세요! 환기!"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네. 고맙습니다...... 커피 한 잔씩들 드시고 가셔요."


 현장은 센터에서 30킬로 이상 떨어진 산골짜기였다. 관할을 너무 오래 비워두는 것이 염려되어서 흔쾌히 그러겠노라 말할 수가 없었다.


"출동 걸릴 수도 있어서 가봐야 해요. 감사합니다."


  추우니 들어가시라 말해도 할머니는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출동할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희고 소복한 눈길 위에 구급차가 지난 바퀴 자국 외에 다른 흔적이 없었다. 아마 첫눈이 온 뒤로 할머니를 찾은 사람이 우리가 유일한 듯했다. 산길을 한참 돌아나갔다. 그제야 백미러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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