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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13. 2022

우리 엄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결혼생활 9년 차인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비번인 날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고 나면, 아내와 나는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체육관에 들러 한바탕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 다소 거창한 점심식사를 하고, 먹다 남은 와인병의 코르크를 뽑아 각각 한 잔씩 따른다.


 사실 와인은 내가 아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구실이다. 소주나 맥주처럼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고, 유튜브를 찾아보면 '하루 한잔 레드와인의 기적 같은 효능'과 비슷한 제목의 게시물이 수 천 개는 있다. 덕분에 건강 염려증의 심각도가 60대 노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아내를 꼬셔 한잔 마시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것이다.


 소량의 알코올은 양질의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기폭제가 된다(세 잔부터는 헛소리가 절반쯤 섞인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아이들의 육아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는 게 절반, 나머지 절반은 엄마 아빠가 처음인 우리 부부의 미성숙한 성정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잘 자라 주는 아이들에 대한 감사.


 지금에 이르러선 와이프도 대한민국의 용감하고 정력적인 젊은 엄마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매사에 자신이 없었는데, 특히 육아가 그랬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밥은 무얼 먹여야 할지, 우는 아이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 초보 엄마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아내는 고민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부모로부터 어떻게 아이를 다루어야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아내의 어린 시절, 불 같은 성격을 못 이겨 아이들에게 폭언을 하고 종종 손찌검을 했던 아버지와, 먹고사는 일에 지쳐 이렇다 할 관심과 애정을 아이들에게 주지 못했던 어머니로부터 도무지 적절한 육아의 방향성을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이 말 안 듣는다고 욕하거나 폭력을 휘두를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나 몰라라 내버려 둘 만한 사람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이 깊었다.




 아이의 눈은 무심했다. 당혹감도, 슬픔도, 그렇다고 분노가 담긴 눈도 아니었다. 체구로 보아 갓 7살이나 되었을까, 아이의 얼굴엔 어른의 그것 같은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엄마는 속옷만 입고 손목과 사타구니에서 샘처럼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문구용 커터칼로 잘게 쪼개진 피부 아래로 채 아물지 않은 어제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주황색 옷을 입은 아저씨는 엄마에게 다가가려다 가슴께를 주먹으로 얻어맞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주황색 옷을 입은 아줌마만 가까이 다가와 엄마의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다정한 말씨로 병원에 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안 간다고 막무가내였다. 아이가 주황색 옷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 아저씨가 씨익 웃어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게 자신을 위해서 억지로 웃는 것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아저씨에게 몰래 다가갔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엄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주황색 아저씨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아이는 알고 있다. 저건 거절의 표시다. 아이는 아저씨가 더 이상 난감해하지 않도록 자기도 작게 웃어 보였다. 다 큰 어른들이 지을 법한 미소를 짓고, 아이는 재빨리 돌아서 종종걸음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안 그래도 큰 아내의 코가 붉게 물들며 부풀어 오른다. 소처럼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지다가 금세 그친다. 나는 눈이 작아서 개울물처럼 눈물을 흘리느라 울음 끝이 긴데, 아내는 폭포처럼 짧고 굵게 운다.


 울음을 그친 아내는 휴대전화 속 아이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리고 내가 익히 아는 그 얼굴을 한다. 잘 모르고 서툴러서, 더 좋은 엄마가 될 만큼 알차게 지난날을 보내지 않아서  한 없이 미안하다는 표정. 그러면 나는 그 표정이 싫어서 휴대전화를 잡고 있는 아내의 손을 가져다 내 양손 사이에 포개어 놓는다.


 가볍게 취기가 오른 몸으로 우리는 함께 침대에 누워 쪽잠을 청한다.


 곧 아이들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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