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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가계부 :월급 직장인에서 무급 연구자로…

C : (건축설계) 퇴직한 건축연구자 • 유학준비생, 남, 31세

by 모초록

2024년 상반기 월 생활비

1,000,000


2024년 하반기 월 생활비

730,000


만 30세에 모은 돈

5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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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다 갔다. 7월 10일… 의 이전 회사가 주는 마지막 월급날을 보내고, 비로소 무직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유학 준비는 도피가 아닌 계획된 것이었기에 준비할 것들은 명확했다. 연말에 있을 박사과정 입학 지원을 위해 연구 성과를 더 보완하고, 필요한 영어성적을 갖추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주변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연말에 지원할 서류들은 내년 초중순에나 허가 여부가 나오기 때문에 그동안 생활을 잘 유지해야 하는 게 필요했다. 당연하게도, 생활에 따라 돈을 쓰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성산동 집의 계약은 올해 12월 말에 끝나기 때문에, 그전까지의 독립적인 생활계획이 필요하다. 계획을 세우던 초반에는 수입 없이 지낸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돈 관리가 중요했다. 이전까지 습관처럼 써오던 가계부는 수입이 없는 사람의 생활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퇴직금을 포함해서 모인 돈을 어떻게 쓸지 계획해야 했다. 다음과 같은 소비 전반 인식에 대한의 변화들이 있었다.


・꾸준히 들어오던 월수입을 기준으로 월 지출로만 가계부를 검토하던 것을, 모아둔 총자산에서 어떤 비율로 생활비나 자기 계발비 등의 명목으로 운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월별 기준 저축 금액을 정해놓고 남은 여비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월별 지출 금액을 먼저 정해놓고 제한된 소비를 해야만 한다.

・생활비와 더불어, 유학 준비에는 다양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학술비 및 자기 계발비 등으로 일부 금액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유학 준비 기간이 시간과 돈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의 가치를 높이는, 곧 나의 보람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지속해서 다짐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위해 과도하게 비루한 현재를 보내지 않도록 사회적 존엄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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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소비 체계를 새로 구축했다. 새로 계획을 짜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파악해야 했다. 기존 급여를 수령할 때의 나의 소비 체계는 다음과 같았다.

7월_대지 1.jpg 회사 다니던 시절의 소비 체계


마지막 월급을 받은 직후, 나는 모인 자산부터 확인했다. 퇴직금까지 포함해서 약 2700만 원. 여기에 묻어둔 임대차계약의 보증금을 포함하면 5천만 원이 좀 넘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목돈이 눈앞에 놓이니 기분이 이상했다. 만 나이 30세… 누군가는 1억을 모았을 테고 누군가는 천만 원도 버거울 것이다. 처음 천만 원을 넘는 금액을 모아서 전세보증금에 보탰던 기억이 난다. 지금 모인 이 목돈도 충분한 지렛대가 되어 나를 도약하게 할 것이다. 보증금은 6개월 후에나 나에게 들어올 테니 2700만 원을 가지고 반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했다.


유학 준비를 위해 돈을 늘리는 것 없이 쓰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옥죄었다. 실제로 이 돈을 다루는 것은 더 어려웠다. 큰돈의 덩어리들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계획을 짜기는 쉬웠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퇴직연금 계좌를 해지하면 어디로 넣어야 하는 것이지? 금세 써버리는 것은 아닐까? 일정 비율을 투자해서 목돈부터 다시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성산동 집 월세 계약 종료일까지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소비만 지속될 계획을 세우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알바몬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기웃거리기도 했으며, 돈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살펴보기는 버거웠다. 구직촉진수당보다 수익이 더 생기면 수령하기 어렵다든지… 하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왜인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니…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해야겠다.


아무튼…! 2700만 원을 가지고 6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6개월분의 월세, 6개월분의 공과금, 논문 제출 및 영어성적 등을 위한 학술비, 9월에 계획했던 학술발표대회를 겸한 일본 여행 여비, 그리고 기존에 운영하던 금융자산에 살을 좀 더 덧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의 생활을 위한 목돈을 남겨두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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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수립한 자산관리계획, 성산동 방을 빼기까지 6개월분의 자산관리 체계는 다음과 같다.

7월-02.jpg 퇴사 후 수립한 자산관리 계획


정기자금과 합쳐서 800만 원으로 계산해 버리고 월 생활비를 약 73만 원으로 책정했다. 매달 6개월간 15일에 생활비를 나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단순히 생활비 통장을 따로 관리하여 나눠두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 계획을 듣고는 꽤 많이 쓰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일단 생활해 보고 줄여볼 수

있으면 줄이기로 하자.


① 금융자산 — 약 800만 원

기존 해외주식금융자산 500만 원에 국내 배당주 300만 원 내외로 해보기로 했다. 배당주에 투자하는 300만 원가량의 금액은 계산된 것인데, 특정 배당주를 일정 수 이상 지니고 있을 때 나오는 배당금만으로 그 배당주를 한 주 더 살 수 있는 금액으로 짰다.


② 학술비 및 자기 계발비 — 약 200만 원

학술발표대회 등록비를 비롯한 토플 응시료, 학원비, 대학 원서 접수비를 일정 금액 할당했다. 결산을 하고 있는 지금 시점으로 약 110만 원 정도 썼다.


③ 여행자금 — 약 80만 원

9월 학술발표대회를 겸하여 계획한 교토 여행에 대한 금액이다. 5박 6일 일정을 80만 원으로 보내려면 꽤 아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④ 저축 및 비상금 — 약 900만 원

남은 자산은 이율이 높은 CMA 통장에 넣고 관리해 보기로 하였다. 퇴직연금 계좌를 최근에 해지하였는데, 해지되기까지 4일가량 시간이 좀 걸리는 걸 알게 되었다. 추후에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게 된다면 이 계좌에 모으지 않을까 싶다. 자산을 나누어 관리해 보면서 가계부의 지출 체계도 조금 손보았다. 지출 항목의 분류를 조금 정리하였고, 자금 출처도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 새로워진 가계부 지출 항목 체계는 다음과 같다.

7월-03.jpg 새로운 가계부 지출 항목 체계


경직되어 보일 수 있겠지만, 체계를 잘 세우면 오히려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퇴직 이후의 돈 관리 체계를 꾸리고 나니, 비로소 직장에서 퇴직한 유학준비생이 된 듯하기도 했다. 계획을 통해 망설임이 조금씩 사라졌다. 학술비 명목으로 돈 쓰는 데에 범위 내의 금액이라면 주저함이 사라졌다. 그러다 몇 가지 실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한 연구실의 출판 작업을 돕게 되어 적은 금액이지만 급여를 받게 되었고, 동시에 교수님의 배려로 연구실 한편에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또한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번역 원고를 다듬는 것에 대한 시급을 일부 받게 되었다. 아직 언제, 얼마의 수익이 생길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아르바이트를 고민하는 일은 떨쳐 낼 수 있었다.


돈과 관련한 이 모든 내용은 중요하면서 중요하지 않다. 돈은 일상과 너무 밀접하여 쉽게 매몰되기 쉬운 주제다. 철저한 소비 계획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곧은 체계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바탕으로 내가 성장하는 것이다. 미래의 목표에 다가가는 것, 그리고 소중한 현재를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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