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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29. 2021

일기가 쓰고 싶어서

마음을 끄적이는 밤

   5월 4일 월요일, 저녁 11시 59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일기가 쓰고 싶어 공책을 꺼냈다.


   몇 시간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겹살집 옆에 쪼그리고 앉으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보다는 나이 많은 아저씨 같았다. 앙상한 뼈가 검은 바람막이 사이로 보일 듯이 마르셨고, 누추한 행색을 한 채로 그림자처럼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고개를 박고 계셨다.

   아저씨를 지나쳤는데도 그 웅크린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아저씨한테 뭐라도 사드릴까?"

   에게 물으면서도 가슴속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떠들며 신호등을 건너는데 한 노숙자 아저씨가 친구 머리를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쳤다. 키 큰 노숙자 아저씨가 우리 옆을 지나가며 뒤돌아 우리를 보며 비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비웃은 게 아니었는데…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웃고 있었고 거기에 그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때 울그락불그락한 친구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잠깐 고민을 하며 '무엇을 사드려야 하지? 빵? 빵이 좋은가? 아니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드릴까?'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장 무난한 편의점 김밥 한 줄, 삼각김밥 두개, 사과주스와 중간 크기 물을 샀다.

   편의점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는데 그제야 지갑을 놓고 나온 게 생각이 났다.


   "아. 제길. 지갑 안 갖고 나왔다."


   그 말을 들은 가 곧장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걱정 마."

   "아니야. 내가 계좌 이체해줄게."

   "아니야. 괜찮아."

   는 카드를 건넸다.

   단돈 6,300원. 이게 얼마라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봉투를 한 장 달라고 하고 그 속에 음식을 담았다. 그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한테 물병 쥐. 내가 먼저 건넬게. 네가 말해. 혹시 위험하면 내가 막을 테니까."


   나는 봉투를 들고, 남자 친구는 물통을 들고, 함께 손을 꼭 잡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여전히 누추한 행색으로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계셨다. "아저씨"하며 부르는 말에 깜짝 놀란 아저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와 아저씨 사이에 선 는 묵묵히 물을 건넸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지 않고 물을 받으셨다. "아저씨 저녁 드셨어요?" 물으며 봉투를 드리자 아저씨는 대답 없이 봉투를 받았고, 우리는 어쩐지 어색해져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아저씨를 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 말에 남자 친구가 대답했다.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지도 몰라."

   그도 나도 목소리가 잠겨서 잠시 말없이 걸었다.

   나는 어떤 상황이 그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었을지 생각해보았지만 가슴만 먹먹해질 뿐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는 문 앞에 멈춰 서서 를 향해 몸을 돌렸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가 말했다.

   "내 생각에 나는 그동안 저런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게 있었나 봐."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그렇지.'

   살며시 그의 가슴에 내 가슴을 맞대었다. 그의 등이 부드럽다. 그가 뿌린 향수 냄새를 맡으며 멀찍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와. 하늘 좀 봐!" 내가 하늘을 가리키자 그도 뒤를 돌아보았다. 달이 하늘을 환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그는 역시 하늘에 큰 관심이 없다. 그가 늘 하는 말처럼 저건 태양 덕분에 보이는 거니까.

   그가 내게 손 잘 닦고 마스크 벗고 얼굴도 닦으라며 잔소리하고, 나도 집에 가면 전화하라는 잔소리로 응수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울컥한 무언가가 내 속에 남아 떠돌아 다녔다.

 


  집에 들어오는데 눈물이 흘러 눈물을 닦아내고, 잠시 앉아 멍하니 있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방금 전 치다만 ‘노숙자 쉼터’를 마저 찾아보았다.

   '노숙자센터에 들어가도 나오는 사람 많아요. 다 밥도 잘 나오고 하는데 일을 왜 하냐 그런 거죠...' '일자리도 알선해주고 하는데... 적응하기도 힘들고 그냥 살자는 생각인 거죠…'

   핸드폰 화면에 뜬 여러 글을 지나쳐 스크롤을 내리자 지도와 함께 근처에 위치한 노숙자 센터 정보가 나왔다. 

   우리 집 근처에 노숙자 센터가 있었구나...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센터에 전화를 걸자 중년의 남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저… 시간이 늦었는데… 지금 통화해도 되나요?"

   중년의 남성분이 걸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 제가 길에서 노숙자분을 보았는데요."

   "그거 술 취한 분이셨죠?"

   "아... 아니요. 행색이 초라하시고, 제가 그분을 오늘 이 길에서 세 번이나 뵈었거든요. 계속 이쪽에서 계셔서 보다가 아까 음식을 좀 드리긴 했는데…"

   "거기가 어디죠?"

   나는 핸드폰 지도를 더듬거리며 위치를 설명했다. 이쪽 지역에 있는 센터라 그런지 금방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사시는 곳은 어디세요?"

   "저도 이쪽 바로 근처에 살아요."

   "근데 이거 경찰에 전화하셔야 돼요."

   "경찰이요?"

   "네. 112에 전화하셔서 신고해주시면 저희 쪽으로 데려와 주실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112를 치는데 울컥거리는 마음이 일렁거려 엄지가 살짝 떨렸다. 첫 전화 벨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한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저... 노숙자분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오늘 이분을... 노숙자센터에 말했더니... 주소가..."



   전화를 끊고 다시 가만 앉아있는데 로부터 집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 경찰에 신고했는데. 노숙자 쉼터에 전화하니까 경찰에 전화하라고 하시더라." 말하는데 또 눈물이 흘러 다시 휴지로 눈을 닦았다. "집으로 가면서 아저씨 봤어?"

   "응, 봤어."

   우리는 말없이 전화기를 붙들었다.

   "나 몸이 떨려." 남자 친구가 말했다.

   "나도 그래. 그래도 아저씨는 적어도 침대에서 주무실 수 있을 거야."

   "맞아."

   "그분이 좋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어."

   "맞아. 모든 사람에겐 두 번째 기회가 필요해."

   "맞아."

   얼마간의 정적 뒤에 전화를 끊고 핸드폰에 전송된 [전화 바람]이라는 문자를 보았다.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해 삭제했다. 다시 멍하니 벽을 보는데 띠리링 하며 벨소리가 울렸다. 순경 아저씨였다.

   "이모다 씨 맞으신가요? 지금 여기 와봤는데요. 저희가 잘 설명드리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모신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가실 데가 있다고 하셔서요. 아무래도 개인의 의견이 중요해서, 싫다시는데 데려갈 수는 없어서요."

   갈 데가 있다니. 아저씨는 어딜 가려는 걸까.

   "아. 그렇군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했고 더는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다른데 집중을 쏟으려 얼마 전에 산 책을 찾아 펼쳤다. 다음장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자꾸만, 먼지 쌓인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심리적인 부분을 상담하고 일자리든 뭐든 발전할 수 있게 각 방면에서 도와드리면 분명 괜찮을 텐데... 아직도 그런 보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각종 생각들이 눈앞을 가렸다.

   나는 책을 덮고 공책을 꺼냈다.

   11시 59분.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털어놓고 싶은 밤에 펼쳐진 공책 위로 한자씩 한자씩 오늘을 적어 내렸다. 어둠의 장막이 아저씨의 슬픔과 고통까지 덮어 사라지게 해 주고, 평안이 그의 마음에 깃들고, 삶을 일으키는 열정을 되찾으시길 바라며 나는 한자씩 한자씩 오늘을 적었다. 



   5월 4일, 월요일. 일기가 쓰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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