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니 맘은 니 맘이지만…
아주 간혹 그런 사람을 만난다.
“왜 안돼? 그러면 왜 안돼?”
그 왜 안되냐는 말이 불가능에 앞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왜 우리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안 돼? 왜 그런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총기를 왜 금지해야 돼? 전쟁을 왜 하면 안 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래도 되는 건데 왜 못하게 하냐는 뉘앙스를 풍기면 뚝배기를 깨 주고 싶다.
초반엔 분노가 일어서 조목조목 그런 일들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이 되어 닿는지를 따지듯 짚었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나 돌아보고 나면 종종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그저 경험이 부족한 것뿐이더라.
경험이 부족하거나, 두려움이 너무 많거나.
실제로 악한 것에 완전히 짓눌려본 적이 없고. 악한 영향력이 사랑하는 이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온전히 마주한 적이 없다. 또 아픔을 경험했으면서, 또 그런 거대한 고통이 나를 찾을까 봐 두려워서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른 채로 지껄이기도 한다.
나도 한낱 인간인데. 그들이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를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고통을 겪은 한 인간이 얼마나 무너지고, 얼마간을 아파한 채로 긴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그 긴긴 시간 끝에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도 하지만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 이겨내기 버거운 상황 앞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그 고통이 거대하기 때문에.
다만 아픔을 겪는 모든 이가 치유되길 바란다. 경박한 말들을 지껄이며 강요하거나 왜 그러면 안 되느냐고. 누가 너를 아프게 해도 일어나지 못하는 건 네 탓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그래. 참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구나 그건. 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정도까지.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지만.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 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어프게하며 죄를 지었으면서도 모르는 사람은 언젠가 그 값을 치른다고 난 굳게 믿는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았으면서도 두려워서 죄지은 이들 편에 서서 “왜 안돼?”를 지껄이는 놈들도. 그냥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리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서 새끼를 밀고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뻐꾸기 새끼처럼. 나무에 떨어져 죽는 남의 새끼 고통을 알려면 나무에 떨어져 봐야 하는데, 나무에 떨어지면 죽으니까,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작은 움직임 정도로, 딱 그 정도로만 가엽게 생각하자.
그래서 이제는 모른 채로 말하는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ps. 소설 <파친코>를 읽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