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글을 완성하기 위하여
12월 오후, 여전히 카페다. 한밤의 유령처럼 떠도는 말들로부터 도피하고자 귓속에 이어폰을 욱여넣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않고 소음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용케도 내게로 파고든다. 괜히 왔어 스타벅스.
어젯밤, 12월 다짐하며, 다가올 새해를 기약하며 “기도”를 한 줄로 정의했다. 종교를 떠나, 무언가 소망하는 존재에게 바치는 조금은 모진 서약 같은 것을.
“기도,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과정의 정당성에 정직했노라 말하기 위하여.”
퍽이나 비장한 마음을 이토록 작은 ‘곳’에 기록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기도제목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고, 꿈꾸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번역”에 관한 짧지 않은 글을 써내려고 한다. 얼마 전, 메일로 제안을 받은 후, 짧지 않은 시간을 번역 관련서적을 뒤적이는 데 할애했다. 내년을 목표로 준비 중인 카페에서 글쓰기와 인문학수업을 운영하기 위해 저자 타이틀은 중요하니까. 글 쓸 자신이 있다. 그런데 글 쓸 자신은 없다. 자신감이 부여되는 순간, 여지없이 구멍 난 풍선처럼 빠져나간다. 여러 번역가들 사이, 비전공자인 난 군무라도 춰야 하는 걸까? 아니면 뭐 막춤이라도? 어쨌든 제안을 받았으니까 써야 한다. 적어도 내가 잃을 건 없어 보인다.
다시 기도를 생각한다.
“기도, 세이렌의 노래는 참을 수 없지만, 과정의 정당성이라는 더 큰 유혹을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