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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Jan 25. 2024

삶의 이력서를 준비합니다

낡은 구두 한 켤레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상주에게 인사하고 영정사진 앞에 국화 한 송이 올렸습니다. 식사자리에서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인의 아버지는 말기암 환자였는데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눈물 없이 담담하게 저희 부부를 응대했으니까요.


어머니로부터 소식을 들은 지인은 급히 부모님 댁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만 혼자 계셨고, 수화기 너머 “아버지가 숨을 안 쉬어”라고 간신히 말씀하셨답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려는데 생전에 아버지가 신던 구두가 어머니 운동화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구두를 보니 왠지 살아계신 것만 같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잠깐의 이야기를 나눈 후,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지인 아버지의 구두가 생각났습니다. 소설가 정이현은 굵직한 사고나 사건이 터지면 신문을 읽으면서 사고당한 피해자의 아침 시간이 궁금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사건 당일의 흔적들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구두의 색깔은 무엇이고, 어떤 소재였을까. 궁금했지만 본 적 없기에 알 길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가 있습니다. 보통은 이력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학교, 직장, 기술 등이 여러분의 이력입니다. 이력(履歷)이란 신 이, 지날 력을 사용하여 내 구두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당신의 이력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과거를 알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구두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분의 낡은 구두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머지않아 죽음이라는 관문에 이르면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 낡은 구두를 벗어두게 될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력이란 삶의 빈칸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운동화 옆에 놓인 구두  켤레에서 인생을 생각합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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