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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an 10. 2018

식물과 동거동락(同居同樂)

초미세먼지와 식물 임상실험 보고서 Ver.2

한 달 내내 환기 가능한 날이 거의 없었던 2017년 3월. 3월 20일 아침의 외부 수치는 PM2.5 70~80 정도였어요. 저와 제 아들은 호흡기가 약한 편이라 공기질에 신경이 많이 쓰여요. 17년 12월엔 수치가 200을 넘나드는 주말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실내 수치 12~18 정도를 유지해 온실 같은 집 식물 200개의 힘을 새삼 느꼈어요. 공기청정기도 있지만, 식물 덕분에 공기청정기는 가끔 돌아가는 정도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공기청정기의 웅웅 소리도 불편한 소음이라 가능하면 조금만 듣고 싶어요.

공기청정기는 초미세먼지가 유입될 때 빠르게 먼지를 제거하는 응급처치용으로 복도나 통로에 배치해요. 그러나, 공기청정기의 필터는 또 다른 오염물질이니 마음 편하게 사용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숲처럼 나무가 많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에너지를 줄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다, '사람을 살리는 실내공기정화식물 50'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사이트(http://www.nihhs.go.kr/personal/air.asp)에서 식물로 초미세먼지와 환경호르몬을 제거하는 방법을 보게 되었어요.


오염된 실내 공기질 개선을 위해서는 식물이 가득한 실내 공간이 해결책 중 하나라 생각하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50가지가 넘는 종류의 식물 200개로 공간을 채웠어요. 일단 공기청정기로 먼지를 걸러내고, 식물이 호흡하며 환경호르몬을 제거하고, 배출하는 산소와 음이온 등으로 인체에 건강한 공기를 만들어 주는 조합. 말하자면 실내 공기질에 있어서 공기청정기는 링거 같은 응급 처치이고, 식물이 뿜어내는 공기는 몸에 좋은, 매일 먹는 보약 같은 '밥'인 셈이에요.


지난 1년 간 실내에 식물을 가득 담은, 온실 같은 집의 임상 실험의 결과는 ①식물이 100개 정도 있을 때는 실내 수치는 외부의 20% 정도, 200개 정도 있을 때에는 10% 정도, ②겨우내 가습기가 필요 없고, ③식물이 먼지를 많이 먹어, 공기청정기 작동 시간과 횟수가 현저히 적어져요. 집 안에 먼지가 굴러 다니지 않아 청소도 매일 하지 않거든요. 상대적으로 전기도 덜 사용하게 됩니다. 매일매일 청소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일주일에 한 번 청소와 화분 물 주기로 바꾼다 생각하면, 오히려 식물 키우기는 +만 있는 가계부 같아요.  


크고 작은 식물 사이즈에 맞는 스타일링, 장소 별 좋은 식물들, 곳곳에 배치한 방법들을 공유하려 식물이 위치한 공간의 사진을 잔뜩 찍어 봤어요. 먼저, 현관 쪽입니다. 입구 쪽은 들락날락하며 외부 공기가 유입되며 아무래도 초미세 수치가 조금 더 높아요. 그래서 들어오자마자 공기청정기 배치가 필수입니다. 이곳의 공기청정기가 제일 많은 일을 해요. 해피트리, 스킨답서스, 금송, 마지나타가 맞이하는 입구. 초미세는 18 정도. 식탁 옆으로는 공기 정화에 탁월한 아레카야자를 두었어요. 식사 시간마다 아름다운 수형을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예요.

미세먼지의 70%는 식물의 잎에서 제거하고, 30%는 뿌리에서 제거하니 뿌리도 통풍이나 호흡이 가능하게 해 주면 효과가 더 좋아요. 물받이가 있는 화분은 물을 비워주고, 바로 물받침이 있는 화분은 작은 돌들을 놓고 화분을 올려 통풍이 가능하게 해 주어야 해요. 까다로운 폴리셔스 앞에서 측정. 초미세 약 15 정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녹보수, 유칼립투스, 해피트리, 마블 선인장, 폴리셔스, 수채화 고무나무, 아왜나무, 떡갈나무가 있는 작은 화단이에요. 테이블 위에는 산호수, 목향, 피토니아, 테이블야자, 해피트리가 몸집을 키우고 있어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의 벽화분. 빛이 떨어지는 곳 전부 식물이 배치되어 있어요. 한 톨의 햇빛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벽 화분 맨 위쪽의 산호수는 이 곳이 마음에 드는지 숲처럼 울창해졌습니다. 산호수는 빨간 열매를 맺는데요, 당연하지만 그걸 심으면 또 산호수가 자라요. 공기도 잘 정화하고 잘 자라는 고마운 산호수인데 이상하게도 저는 좋은 에너지를 느끼지 못해요. 산세베리아도 참 좋은 식물인데, 저희 집에는 딱 한 화분만 있어요. 좋은 식물임을 알면서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어 참 난감합니다.

2층은 일반적으로 1층보다 수치가 낮은 편이에요. 오늘은 12 정도. 2층 복도에도 식물을 가득 채웠어요. 식물은 3년 전부터 키워온 것들이고, 선물 받은 것들도 많아요. 2천 원 3천 원짜리 포트 화분들을 키워 증식한 것도 꽤 되고요. 벽화분 속 식물들은 모두 2천 원 3천 원짜리. 전부 다 채워도 5만 원 정도. 그런데, 살아 있는 한 지속적으로 건강한 실내공기를 선물해주니 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식물에게도 고마워, 예뻐, 건강하게 자라야 해. 말하는데 써 놓고 보니 아이한테 하는 이야기와 비슷해요.

2층 아이방. 아레카야자 3그루와 필로덴드론 1그루. 점점 무성해져서 잎을 헤치고 책상으로 가야 해요. 고만고만한 애들을 나란히 죽 놓으면 이런 느낌입니다. 비례 균형 대칭 리듬감이 무시된, 스타일링의 잘못된 예. 그렇지만, 공간에 있어서는 동선을 틔워주고, 채광에 맞는 식물을 배치, 통풍에 제일 적절한 위치예요. 식물이 시선을 차단해 아이의 사생활도 보호해 주고요. 아레카야자는 해충에 강하고, 하루 1리터 정도까지 수분을 머금고 뿜으니, 아주 유용한 실내용 식물이에요. 필로덴드론은 음이온 방출이 많아 공부방용으로 추천합니다.

2층 손님방 겸 서재의 식물들. 해피트리, 뱅갈 고무나무, 스파티필름, 팔손이. 사진 속 오른쪽 가장 큰 나무는 팔손이. 2만 원에 샀는데 볼 때마다 뿌듯해요. ^^

2층 안방의 떡갈나무, 홍콩야자, 나비란, 뱅갈 고무나무, 팔손이. 스타일링에서 꼭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은 미술 교과서에 나왔던 '비례', '균형', '대칭', '리듬감'이에요. 화분 전체의 덩어리 감으로는 비슷하게 대칭을 잡고 각각 덩어리에는 강약 중강 약 / 대중소로 리듬감을 주고요, 비례는 2:1을 기억해 두시면 황금비례랑 비슷하게 맞아 시각적으로 훨씬 아름답습니다. 사진 속 화분들을 그저 나란히 늘어놓았다고 상상해 보세요! 분명히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게 느껴질 거예요.

지하 스튜디오. 작업실. 꿈을 키우는 공간.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옷도 만들게 될 공간. 역시 창가마다 식물을 배치하고, 여러 가지 식물들을 물꽂이 하고 있어요. 작은 정원. 왼쪽 무성한 잎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엽, 남천, 관음죽, 아레카야자, 콤팩타, 인도 고무나무, 필로덴드론이 있어요. 구석구석 작은 화분들이 있는데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네요. 올봄 먼지가 아주 많은 날, 식물이 내뿜는 공기 덕분에 공기청정기가 덜 돌아가면서도 평화롭게 느껴지는 실내 공간을 동영상으로도 한 번 보여드릴게요!

저의 임상으로는 식물은 많을수록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식물 관리법을 조금 알긴 해야 하는데, 그저 내게 필요한 만큼만 알면 되니 어렵지 않아요. 식물 전공 박사님이 될 것은 아니잖아요. 늦가을, 싹이 트나 안 트나 궁금해서 심어본 아보카도가 연둣빛 새싹을 틔워 올려 잎을 반짝이고 있는 걸 봤을 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던 기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화분으로 옮겨 실내로 데리고 왔는데, 볼 때마다 여전히 기분이 참 좋아요. 식물을 매일 본다는 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실용적이고도 아름다운 사치입니다.

아보카도 씨앗이 틔워 올린 연두빛 잎사귀. 해가 잘 드는 남향 쪽 창가에 두니 계속 잎을 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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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좋은 아침 하우스 : 식물과 자재로 미세먼지 잡는 집 http://tvpot.daum.net/v/safd46adNAA6a9bNTnDl6nT
SBS 좋은 아침 하우스 : 집 안 '좋은 공기' 유지하는 Tip :http://tvpot.daum.net/v/s31ddYNNNwfmf26KWbmWibw

6분 20초부터 제가 등장하는 MBC 경제매거진 M 다시 보기 :

연합뉴스 다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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