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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텃밭 준비

우리 가족 좋아하는 걸로, 화분으로 8개 딱 ‘먹을 만큼’

독학 매니아

저는 독학을 좋아해요. 처음 시작은 중학교 때. 통기타를 치고 싶어 엄마를 조르고 졸랐으나 절대 학원을 안 보내주시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용돈을 모아 겨우 기타를 사고, 다시 학원을 보내 달라 졸랐는데 씨알도 안 먹히지요. 결국, 기타 교본을 사서 그림 보며 기타 줄 잡고, 코드 몇 개 외워서 노래 반주곡을 치는데 영 재미가 없었어요. 저는 노래는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가성비를 생각하면 학원을 보내지 않은 엄마의 판단이 옳았던 거예요.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는 것은 잘 하지 않는 비주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어요. 주로 1인칭 주인공 시점보다는 3인칭 작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봤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아이들이 쓰는 참고서나 학원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참고서, 학원을 골랐어요. 사남매의 맏이로 독야청청 자라 그런지,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타고난 성품이 삽질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 독학은 컴퓨터 배우기에도, 제과 제빵 배우기에도,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일본 요리로도 이어집니다. 특히 쿠키나 빵을 구우면서 삽질을 많이 했어요. 오븐 예열 후 구워야 하는 걸 처음부터 넣고 구워 새까맣게 타 버리거나, 반죽이 녹아내려 아스팔트 위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 모양의 쿠키가 된다거나, 바삭한 스콘을 상상하고 구웠는데 질긴 스콘이 되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소보로 빵, 돌처럼 딱딱한 치아바타 등으로 이어지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깨치는 재미가 있으니, 놀이로서의 배움이랄까요.


그래도 이런 삽질들은 저만의 비기, 레시피 북으로 남았습니다. 지금은 치아바타나 피자 도우, 슈톨렌 같은 건 먹고 싶을 때 딱 맛있게 먹을 만큼은 할 수 있어요. 수많은 삽질로 골라낸 훌륭한 레시피 북이 있으니까요. 선생님을 모시고 사사하지 못해 정통성에는 의문이 있지만 내 입맛에 맞는, 나와 내 친지들이 즐길 수 있는 ‘실용 요리법’이라고 주장해 봅니다.      

작년 초여름 사진이에요. 파란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요. 당연히 머리로 아는 걸 눈으로 보면 신기합니다.
꼭꼭 숨은 수박이 보이시나요. ^^ 작은 한 통이 열려 따 먹었습니다. 오른쪽은 열무. 이모작 해서 물김치 두 번 담가먹었어요.

독학으로 텃밭 준비

이 삽질의 독학은 텃밭 가꾸기로도 연결됩니다. 텃밭을 시작할 때에도 일단 주말농장을 신청하고, 씨앗부터 사는 거예요. 일은 먼저 치고 나중에 수습하고. 완벽한 시작을 하려 들면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거든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저는 여전히 무식하고 여전히 용감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지름 60cm 화분으로 8개만 딱 준비해서 ‘먹을 만큼’ 기릅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무화과 2그루, 블루베리 2그루, 토마토, 물김치 담을 열무, 쌈 채소, 고수, 고구마 등등. 쑥과 쑥갓, 미나리, 로즈메리 같은 향신료도 꼭 키웁니다. 저는 식물 200개 키우고,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는 조금 바쁜 사람이니까 손이 많이 안 가는 애들로 골랐습니다.      


아들과 둘이 옥상 텃밭에서 풀을 뽑으며 물을 주는 그 순간. 새파란 하늘, 시원한 물줄기, 환한 햇빛, 싱그러운 풀 향기, 스쳐 지나가는 라일락 꽃향기. 웃는 아들의 뽀얀 얼굴. 토마토 따 같이 씻어 먹던 추억. 나중에 이 추억을 얼마나 되새김질하며 살게 될지 지금은 잘 모릅니다. “엄마 쪼아-” 하는 아들과 아빠 노릇 남편 노릇에 충실한 남편과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먹으며 실없이 웃는 이 시간이 참 좋아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 생각하면, 웃고 있으면서도 벌써부터 그리워 마음 한쪽이 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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