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식탁을 차리며 생각한 것들

태국식 당근 샐러드와 토마토 카레

by 주토토

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에 가도 사진 한번 찍는 법이 없었다. 아내가, 친구들이 음식 사진을 찍으면 내심 빨리 찍기를 기다렸다. 음식은 배불리 먹는 거지, 감상하고 공유하는 게 아니라고 여겼다. 그랬던 내가 요리 에세이를 6개월째 쓰고 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요리라곤 김치찌개나 파스타 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육아휴직 동안 요리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복기하고 직접 따라 하며 매일 같이 아내를 위한 식탁을 차렸다. 모든 음식이 처음이라 번번이 실패했지만 내일은 나아질 거라며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출산 후 산후조리가 필요한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식단을 짜기 위해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뿐 아니라 각종 도서를 읽으며 집중력을 발휘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를 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의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찍어야 했다. 도저히 이대로 먹기 아까웠다.


평소처럼 식사를 하기 전, 경건한 의식처럼 사진을 찍는 내게 아내는 말했다.
“그러지 말고 지금까지 찍은 걸 SNS에 올려보면 어때?”
싸이월드 이후 SNS라곤 거의 운영해본 적 없던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뭣하러?”
아내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깝잖아. 누가 알아. 당신처럼 산후조리 식단을 찾아 헤매는 남편들이 있을지.”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때 나는 식탁에 태국식 당근 샐러드와 당근을 잔뜩 넣은 토마토 카레를 올려놓았다. 당근은 간의 해독 기능을 돕는 베타카로틴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산후 체력 저하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모유가 잘 돌게 하는 최유제 채소다. 한식에는 당근이 요리의 보조 재료로만 쓰여서, 당근을 효과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각종 당근 샐러드였다. 채 썰은 당근에 멸치액젓을 넣고 다진 마늘과 파, 고추기름을 얹는 중앙아시아 식 당근 샐러드도 해 먹어봤고, 프랑스에서 먹는다는 당근 라페도 요리해봤다.

우리 부부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솜땀처럼 먹는 태국식 당근 샐러드였다. 국내 재료를 사용한 태국식 소스에 파파야 대신 당근을 넣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피시소스 대신 까나리액젓 두 큰 술로 당근을 절여놓고, 매실액이나 설탕, 레몬즙, 다진 마늘은 한 큰 술씩, 다진 땅콩, 다진 토마토, 고수는 취향껏 넣고 버무려줬다. 여기에 코코넛 오일이나 올리브유를 살짝 넣으면 화룡정점이다. 당근에 함유된 베타카로틴과 같은 지용성 비타민은 기름에 볶거나 기름을 뿌려 먹어야 체내 흡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번의 실험과 실패를 통해 얻게 된 노하우를 서랍 속에 두는 건 아내 말대로 아까운 일이었다.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내가 요리 유튜버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요리를 배웠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을 전하면 어떨까. 고민 끝에 나는 글의 방향을 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산후조리 식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공부하여 제공하되, 전문가인 척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의 모든 요리 블로거들은 자신처럼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처럼 하면 안 된다며 나의 요리 실패담을 적기로 했다.


완벽과는 상관없어요. 의도가 중요한 거예요. 그게 요리를 완성하죠.

-다큐멘터리 <어글리 딜리셔스> 중 데이비드 장의 말


육아와 살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티도 안 난다. 육아휴직 동안 내가 나의 일과를 기록함으로써 내가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 글들이 내가 칭찬받으려고 하거나 자랑하려고 쓴 것이 아님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누군가에겐 나의 이 글과 요리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이 사회는 남성 육아휴직을 권하지 않는다. 때론 남성 육아휴직자는 특혜를 받은 사람처럼 보인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처럼 직업 특성상, 육아휴직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육아를 해내야 하는 분들에게 나의 글과 요리가 사치처럼 보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내가 남성으로서 받는 혜택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같은 육아휴직을 해도 남자는 '라테 파파' 소리를 듣지만, 여자는 '맘충'이란 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아빠의 육아를 단지 칭찬하려 들지만, 엄마가 된 여성에겐 ‘모성애 서사’를 강요하며 모든지 가르치려 든다는 걸 곁에서 보았다. 그것을 때론 참고 때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내의 모습을, 그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어 졌다.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아내(여성)가 혼자 밤낮없이 우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육아의 모든 책임과 짐을 아내(여성)에게 혼자 떠맡기는 이 사회가 과연 온당한 걸까. 아내(여성)가 아이를 돌보는 동안, 출산으로 극심한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겪은 아내는 누가 챙겨야 할까. 자신을 위해선 밥 한 숟가락 떠넘기기 어려운 독박 육아의 아내(여성)를 위해 누군가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남편들이 존재할 거라 믿으며 나는 꾸준히 글을 썼다. 누군가는 내 글에 응답해줄 거라 믿으며.


'남편이 차리는 산후조리 식단’이라는 부제는 타이틀일 뿐, 실상은 요리 에세이를 빙자한 ‘기혼 남성이 육아와 요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을 담은 <아내를 위한 식탁>은 그렇게 탄생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처음에 채 써는 방법을 몰라서 손이 베인 적이 몇 번 있었어요. 특히 당근은 단단해서 무나 감자보다 더 어려워요. 도마가 안 움직이게 하려면 도마 밑에 행주를 깔아 두시면 돼요. 채 써는 게 어려우면 채칼을 사용하세요. 채칼도 손 다치기 쉬우니 장갑 끼고 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토마토 카레는 보통 카레 하듯 조리하되, 토마토에 열을 가해 나오는 수분으로 채소들을 익히는 거라서 따로 물을 안 넣어도 돼요. 토마토 껍질은 안 벗겨도 돼요. 오랜 시간 끓이는 동안 껍질이 녹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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