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기억은 없는데, 다들 어디론가 사라짐
1. 소니 워크맨 아니고, 사뇨 워크맨
90년대에 아버지가 일본에 불법 체류하며,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셨어요. 덕분에 분당에 아파트도 장만할 수 있었죠. 귀국하실 때 일본 가전 제품을 잔뜩 사 오셨어요. 그중에 SANYO 카세트 플레이어도 있었어요. 남들 삼성 마이마이나, 소니 워크맨 들고 다닐 때 저만 사뇨를 들고 다녔어요. 정말 정말 작았어요. 카세트테이프에서 몇 mm만 커진 크기였으니까요. 그걸 도서관에서 도둑맞아요. 피눈물 나더군요. 다른 아이는 사전을 잃어버려서 도서관이 발칵 뒤집혔죠. 도서관 총무 형이, 사전 잃어버린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카세트 플레이어보다, 보던 서전이 없어지는 게 더 가슴 아픈 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 귀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잃어버린 애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요? 누가 사전 잃어버린 사람 속 안 상하대요? 이보다 좋은 카세트 플레이어는, 제 인생에 더는 없었죠. 그 망할 놈의 도서관 도둑놈 때문에 대우 요요였나? 엘지 아하였나? 하여튼 뚱뚱하고, 못생긴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어야 했어요.
2. 삼촌이 사 온 아이와(AIWA) 카세트 플레이어
외삼촌은 사우디 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목돈을 벌어 오셨어요. 그때 별 신기한 것들을 많이 가져오셨더랬죠. 샤넬 비누 여러분들은 써보셨나요? 그걸로 세수를 하면, 천국의 향이 미아리를 휘덮었어요. 아이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그때 우리 집의 자랑스러운 살림 중 하나였죠. 삼촌은 아바의 극성팬이었어요. 삼촌 덕에 저는 일찍부터 팝송에 눈을 떴어요. 솔직히 좋은 건 모르겠고, 영어로 쏼라쏼라 하는 노래가 멋져 보였던 거죠. 아바, 보니엠,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튼, 이럽션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미아리 꼬마는 저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럽션의 '원웨이티켓'이 진짜고, 방미가 개사해서 부른 '날 보러 와요'는 짝퉁임을 알고 있는 소년이 바로 저였다니까요. 형, 누나들은 저런 엄청난 크기의 카세트를 들고, 해변에서 흉측하게 디스코를 추며 놀았어요. 세상에서 제일 트렌디한 표정으로요. 그런 야만의 시대가 있었답니다.
뜬금 원웨이티켓 한 번 듣고 오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0D9Zq5lw2W4
3. 이런 코딱지만 한 기계에서 음악이 나온다고? 아이리버 MP3
MP3가 등장했을 때, 음질이 성에 안 차더군요. 초기 제품은 실제로 귀에 닿는 음질도 별로였지만, 심리적 거부감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해요. LP판, 카세트테이프, CD는 만져지는 물건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걸 기계에 꽂아야, 비로소 음악이란 게 흘러나왔잖아요. 파일이란 생소한 개념이 도대체가 이해가 돼야 말이죠. 그 파일이 도대체 뭐기에, 보이지도 않는데, 음악을 저장하고, 나오게 하는 걸까요? 이거야말로 연금술 아닌가요? 연금술보다 더 대단한 마술 아닌가요? 이렇게 코딱지만 한 곳에 들아간 기계음이 변변할 리가 있겠어요? 작고, 편리는 하다만 음질은 별로구나. 로봇이 들어야 할 음악처럼, 정이 안 갔어요. 이렇게 세상이 급격히 진화하면, 김포공항에서 달나라 갈 날도 멀지 않겠구나. 너무나도 혁신적인 제품이었죠. 아이리버 제품을 가장 많이 샀고요. 삼성 Yepp도 한 번 썼던 것 같아요.
4.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디자인 충격 아이팟 셔플
진짜 처음엔 어이가 없더군요. 기계가 아니라, 학용품 느낌이었어요. 디스플레이가 하나도 없어요. 노래도 그냥 나오면, 그걸 들어야 해요. 기술력이 딸리면, 딸린다고 해라. 뭐? 랜덤 플레이? 노래가 복권이야? 선택도 할 수 없고, 기계가 주는 대로 들으라고? 기계를 보면서, 멍청하단 생각이 든 건 깡통 로봇 이후 처음이었어요. 이딴 걸 어떻게 팔 수가 있지? 너무 예쁘니까, 안 살 수가 없더군요. 가지고 있으면 행복해지더라고요. 깃털처럼 가볍기까지 했어요. 별로 비싸지도 않았는데, 가지고 있으면 괜히 자랑스럽더라고요. 남미 여행할 때, 아아팟 셔플을 가지고 다녔어요. 동기화한답시고, 게스트 하우스 컴퓨터에 꽂았다가 노래 다 날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놈의 동기화가 여러분은 쉽나요? 세상 유행에 참견 좀 하려면, 아이팟 셔플을 목걸이 대신 걸고 다녀야 하는 시대가 있었는데 말이죠. 가장 저렴하게 애플 유저가 될 수 있는 자비로운 제품이기도 했어요. 셔플이 아니면, 제 인생에 애플은 없었을 거예요. 아, 후배한테 아이폰을 몇 번 받아서 썼군요.
5. 내 영혼의 필수품 삐삐, 나는 해피텔레콤 01577
삐삐 번호는 012, 015로 시작했어요. 저는 01577 해피텔레콤을 썼어요. 아마 더 저렴해서 상대적 듣보잡인 01577을 썼던 것 같아요. 012로 시작하는 한국 이동 통신이, 아무래도 더 있어 보였죠. 삐삐는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어요. 메시지가 오면,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남긴 음성을 확인해야 했죠. 삐삐로 사랑 고백하고, 이별 고백하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극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늘 있었죠. 공중전화는 늘 줄이 길고. 쉬는 시간은 십 분뿐이고. 삐삐 때문에 세상 말세다. 어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강의실에서 뛰쳐나가는 놈이 꼭 한둘은 있었으니까요.
6. 걸면 걸리는 걸리버, 내 인생 최초의 폴더폰
박진희가 가터벨트에 걸리버 폰을 달고 등장하는 CF로 유명해졌죠. 여러분은 현대가 핸드폰을 만들었던 시대를 기억하시나요? 현대 전자의 야심작, 걸리버. 이것도 나름 세련된 도시남자의 양복 주머니에서 나오는 핫한 제품이었어요. 접는다는 거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요. 컴퓨터 마우스처럼 생긴, 더럽게 무거운 폰이었죠. 이거 가지고 학교 가면, 다들 달려들어서 나도 좀 폰을 열어보자. 촌것들 사이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의 세련남이 될 수 있었죠. 폰이 아가리를 캐스터네츠처럼 짝짝 벌리기만 하면 다들 자지러졌어요. 모토롤라의 스타택이 가까워지면, 훨씬 더 못 생겨지고, 초라해지는 신기한 폰이었지만 저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명 그 자체였죠. 걸면 걸리는 걸리버. 누가 지은 이름일까요? 저는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아재 개그라며 치를 떨겠죠?
7. 수많은 노트북들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다른 건 없어도 노트북은 꼭 있어야 했죠. 옛날 노트북이 좀 무겁나요? 3kg은 거뜬히 넘었죠. 그래도 가장 소중한 귀중품이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호스텔 방에는 못 놔두겠더라고요. 배터리는 또 얼마나 금방 닳는지, 콘센트 찾아다니는 것도 일이었죠. 노트북을 등에 짊어지고, 약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했는데, 하마터면 허리가 나갈 뻔했어요. 자판에 물을 쏟고, 커피를 엎지르면 키보드를 일일이 다 떼어내고, 말려서 재조립을 하곤 했죠. 그렇게라도 되면 다행이죠. 전자 제품은 물 닿으면 끝이잖아요. 그래서 엄청 큰 키보드를 새로 사서, 따로 연결해서 써야 했어요. 과장 좀 보태면, 스노보드 만한 키보드였어요. 비싼 애플이나 IBM은 그림의 떡이었죠. 도시바, 아수스 노트북을 주로 썼네요. 늘 최저가 노트북을 쓰긴 했지만, 크게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데스크톱은 삼보 트라이젬이 인생 최초의 컴퓨터였어요. 아래아 한글이 아닌, 보석글을 지원했죠. 가격은 180만 원 정도 했는데, 싸게 산 거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요. 플로피 디스크에 리포트를 저장할 땐, 007 제임스 본드라도 된 것처럼 뿌듯했는데 말이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게 오고, 나를 떠나는 시간을 잠시라도 붙잡는 방법은 몰입이에요. 이렇게 글을 쓸 때만큼은 아무것도 저를 막지 못해요. 딴생각도, 딴 사람도 될 수 없어요. 꼭 내가 되어서, 이 순간을 살 수 있어요. 이 얼마나 근사한 신비 체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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