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고는 당신, 잠 잘 자격 없음!

새벽 세 시, 외롭고, 두려운 사내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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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 니시무라 시게요시, 아리에의 치즈

이것도 역류성 식도염 증상일까? 밤이면 두피가 가렵다. 등으로, 다리로 번져간다. 새벽 세 시쯤 눈이 떠진다. 작은 트림이 올라오면서 명치가 타오른다. 앉기만 해도 통증이 잦아든다. 재빨리 눈을 뜨고, 앉는다. 반복이 되니, 대비가 된다. 가려움은 자기 전, 통증은 새벽. 번갈아가며 괴롭힌다. 또 새벽 세 시, 앉는다.


아무도 없다.


니시무라 시게요시 씨가 안 보인다. 문쪽 침대 2층을 쓴다. 정유회사를 15년 전에 은퇴하고 매년 세 나라 정도를 다닌다.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일곱. 하루 1,2만 원으로 먹고 잔다. 아침저녁은 식빵과 생토마토. 그가 2층 침대로 올라갈 때 발뒤꿈치를 눈여겨봤다. 각질 하나 없다. 바른 자세로 누운 그를 보면서, 관 속 시신을 떠올린다. 내가 이렇게 무례하다. 발뒤꿈치가 말끔한 채로, 여행하다 죽고 싶다. 그는 나의 꿈이다. 니시무라 시게요시 씨가 안 보인다.


아리에도 없다.


아리에. 국적은 이스라엘. 한국 나이로 서른다섯.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뿌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옮겼다. 부모님은 미국인으로 남았다. 아빠보다, 엄마보다 아들이 더 종교적이고, 더 뿌리에 집착한다. 사라져 가는 전 세계 유대인 자료를 채집 중이다. 신발만 신은 것까지 일곱 켤레. 정장에 캐주얼, 옷도 여러 벌이다. 그 짐을 다 들고 도미토리에서 잔다. 한 달 생활비는 40만 원 안팎. 잠자리 포함이다. 생활비로 하루 5천 원 정도 쓴다. 저녁은 유대교 교회에서 해결한다. 자기가 산 달걀, 자기가 산 치즈에 매직으로 굵게 이름을 써넣는다. 아리에는 헤브루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아리에는 또 어디 간 거야? 6인실 방에 나뿐이다.


제길!


내가 코를 곤 거야. 오죽하면 이 새벽에 뿔뿔이 흩어졌을까? 거실에서, 발코니에서 쪽잠을 자고 있나 봐. 잘 때의 몸뚱이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어떤 날은 누군가의 코골이에 내가 나간다. 도미토리는 누구라도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나는 코 안 골아! 대부분 장담한다. 모르는 거다. 열몇 시간 야간 버스에서 시달렸다면, 평소의 내가 아니다. 얌전한 토끼도, 미친 고릴라가 된다. 술 취한 전기톱 소리를 내며 잔다. 일본인 친구 카즈마가 내 코골이 동영상을 안 찍었다면 내 전기톱을 평생 모를 뻔했다. 시베리아 벌목장 전기톱이 내 코에 숨어 있었다. 왜 또 코를 곤 거지? 딱히 피곤할 이유는 없었다. 몸이 안 좋아서다. 깊은 잠을 못 잔 피로가 누적된 거지. 내일 당장 숙소를 옮겨야겠다. 청소 여사까지 나를 싫어한다. 다행이라면 그녀는 모든 손님을 싫어한다. 단 1초도 웃지 않는다. 내가 주방에서 차라도 끓이면 찬장 문을 소리 나게 닫는다. 찻잔을 꺼내고 문을 안 닫다니. 차 스푼을 썼으면, 서랍부터 닫아야지. 그녀는 소리를 쿵 내며 문을 닫고, 소리를 쿵 내며 서랍을 민다. 나도 닫으려고 했어. 억울하다. 과연 닫았을까? 안 닫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룸메이트들이 나를 나무랐다. 웃으며 헐렁한 놈아 했다. 누군가에게 거슬리는 행위임을 명심하지 않았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용서로 존재한다.


명치를 태우던 고통이 갑자기 사라졌다. 내 존재가 흔들린다. 그깟 몸의 통증이다. 더 큰 두려움은 작은 두려움을 깡그리 먹어치운다. 그들을 찾아야 하나? 찾으면? 코를 골았냐고 물어? 골았다고 하면? 미안해. 다음부턴 안 골게. 이러게? 안 그럴 수 있어? 코골이를 통제할 수 있어? 묻지도 못 하겠다. 무섭고, 외롭다. 그냥 여기를 뜬다. 지금 나보다 더 고독한 사람은 없다.


-뭐 하는 거야?


거실에서 아리에가 노트북을 빤히 보고 있다.


-응, 일하고 있어. 오늘 안식일이었잖아. 할 일이 밀렸어.


유대인은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컴퓨터도 안 된다. 스마트폰도 안 된다. 기계를 철저히 멀리한다. 그래야 쉼이다. 니시무라 시게요시 씨가 마침 화장실에서 나온다. 나를 본다. 웃는다. 방으로 들어간다. 우호적인 웃음이다. 희망이 생긴다. 화장실에 가려고 깼던 건가?


-아리에. 나, 혹시 코 골았어?

-아니, 왜?


심장이 철렁했다. 답과는 상관없이, 철렁! 그제야 내용이 뇌로 전달됐다. 안도의 한숨. 더 머물러도 된다. 나는 구원받았다. 누구에게? 아리에와 니시무라 시게요시 씨에게? 전기톱을 꺼 놓은 내 코에게? 코를 고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당당하다. 나는 공포에 시달린다. 코 고는 소리가 싫으면 도미토리에서 묵지 말아야지. 이렇게 당당해도 된다. 이런 당당함이 사실 상식이다. 나는 흠 없는 존재이고프다. 청정인이고자 한다. 그게 나를 물어뜯는다. 미련하고, 뻔뻔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베개를 돋운다. 마음의 병과 몸의 병, 기묘한 쌍둥이가 내 몸을 휘감고 있다. 당장은 홀가분하다. 간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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