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으로 십 년을 산 한 남자 이야기

우리의 일상은 사실 엄청난 특혜였습니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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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이 쏟아지네요. 이제 아홉 시네요. 보통 낮잠을 자는데,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었어요. 모처럼 시내에서 200밧 뷔페를 먹었죠. 제가 거기서 보자고 했어요. 단돈 8,000원에 캘리포니아롤도 있고요. 브로콜리 크림수프도 있죠. MRT(지하철) 수쿰빗 (SUkhumvit)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백오십 미터 정도 걸으세요. Furamaexclusive asoke 호텔이 좌측에 보입니다. 호텔 1층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시간에 가면 200밧에 뷔페를 즐기실 수 있어요. 소박하고, 은근히 알차요. 단골집이죠. 식당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화가를 만났어요. 화가이자, 제 글을 좋아하는 독자이기도 하죠. 원래 만나기로 한 날 감기 몸살이 걸려서요. 저 말고, 화가분이요(호칭이 참 어려워요. 그냥 화가라고 하면 무례한 느낌이 들어요). 한 번 무산되고, 두 번째에 드디어 만나서 밥을 먹었어요. 방콕에서 전시가 있어서 잠시 와 있고요. 조만간 미얀마에서도 전시가 있을 거래요. 늦깎이 화가예요.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기초를 다진 게 아니라, 성인이 돼서 새로운 도전을 한 경우죠. 혹을 갑상선 암인 줄 알고 많이 놀랐대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심장이 선천성 기형인 걸 알았대요. 지금 삼십 대 후반인데요. 삼십 년 정도 더 살 것 같대요. 그 이상은 못 살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해요.


"아버지가 루게릭 병으로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병 진단받고 십 년을 사셨어요. 저 때문에 병을 발견했죠. 아버지 말투가 갑자기 어눌해져서,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지금은 후회해요. 빨리 발견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으니까요. 얼마나 무서운 병이냐면요. 근육은 하나씩, 하나씩 파괴되어도, 뇌는 멀쩡해요. 나중엔 눈꺼풀조차 못 움직여서, 눈도 못 감는데요. 감고 싶지 못하는 눈을 , 멀쩡한 뇌로, 정확하게 괴로워하는 거예요. 아버지도 포기하고 싶어 하셨죠. 기도가 막혀서 응급실로 실려간 날이었어요. 기도관을 삽입해야 하는데요. 결정을 해야 해요. 기도관을 삽입하지 말고 죽음을 받아들이든지, 기도관을 삽입하고, 목숨만 유지하든지. 기도관을 삽입하면 웬만해선 죽지도 못해요. 죽을 기회가 아예 파괴되는 거예요. 평소에는 죽고만 싶다던 아버지가, 기도관 삽입을 원하셨어요. 근육이 모조리 파괴될수록 목숨이 애틋해지신 거죠. 그렇게라도 살고 싶어 하셨어요. 십 년을 사셨어요. 보통은 오래 살아도 7년인데요. 지금은 천국에 계실 걸 알아요."


<잠수종과 나비>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어요, 엘르 편집장 쟝 도미니크 보비는 아들과 연극을 보러 가는 도중에 전신 마비증세가 와요. 3주 후에 눈을 떠요. 감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인데요. 오직 왼쪽 눈만 깜빡일 수 있게 돼요. 눈 깜빡임으로 의사표시를 해요. 편집자가 알파벳을 읽어 내려가면, 깜빡, 자신이 원하는 알파벳에서 깜빡. 편집자는 그걸 낚아채듯 옮겨요. 미친 짓이죠. 어린아이 혼자 만리장성을 쌓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렇게 완성된 첫 문장은


-죽고 싶다


였어요. 쟝 도미니크 보비는 죽지 않고, 눈 깜빡임 하나로 책을 완성해요. 15개월 동안 이십만 번을 깜빡여서요.


-정상인으로 마지막 잠을 자고, 눈을 떴으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른 채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그 아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당연했던 것들이 엄청난 가치로 다가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그는 무거운 잠수종(다이빙벨)에 갇혔어요. 나비를 꿈꿔요. 나비가 되어 미다스의 황금 궁전을 거닐고, 아름다운 여인의 곁에 누워서, 자는 여인의 얼굴을 어루만져요. 상상의 나비와 현실의 잠수종은 매일 싸우고, 화해하죠. 보비는 책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죽어요. 전부를 다 썼으니, 죽을 수밖에요. 사지가 멀쩡했다면, 15개월이 아니라 30개월을 써도 책을 못 끝냈을 거예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사막의 실가락지 같아서요. 종일 헤매도 못 찾아낼 수 있어요. 이 악 물고, 종일 문장 하나를 쓰는 거죠.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끝을 낼 수 있었던 거죠. 우리는 해낼 수 있어서, 게으른 걸지도 몰라요.


루게릭으로 십 년을 버틴 한 남자의 하루가 궁금해요. 언제가 가장 기다려졌을까요? 간병인이 깨끗하게 몸을 닦아주는 날이었을까요? 병원 복도에서 들리는 딸의 말소리였을까요? 눈꺼풀이 용케 움직여서, 드디어 눈을 감고 숙면을 취할 때였을까요? 삶을 끈질기게 안 놓았으니, 죽음 이후는 오히려 씩씩하고, 자유로웠을까요? 한 마디, 한 마디가 경이로워요. 보비의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 저도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당신에게 나비가 많이 찾아오기를...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쟁이의 작은 오체투지입니다. 사막에도, 남극에도 저의 책이 꽂혀있는 꿈을 꿔요. 마을의 작은 도서관, 학교에도 박민우의 책이 꽂혀있기를 바라죠. 여러분이 신청해 주실 수 있어요. 저의 꿈을 이뤄주실 수 있죠. 미리 감사드려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태국의 음식, 식당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가볍게 즐기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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