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좋은 책을 만났으니 이번 생은 감사하렵니다
최근에 이 책을 세 번째로 읽었어요. 어릴 때는 이야기의 참신함, 반전이 중요했죠. 기발해야 소설다운 소설이라 여겼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인물의 개연성에 초점을 맞추게 돼요. 그럴듯한 인물 말고, 이건 진짜다. 소설일 수가 없다. 분명 존재하는 인물이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입체적 인물에 매료되더군요.
'자기 앞의 생'은 어찌 그리 지독할까요? 읽는 내내 가라앉아요. 우울함과는 달라요. 함부로 우울할 수 없는 어떤 선을 이미 넘긴 느낌이랄까요? 시종일관 그래서 담담해요. 창녀, 고아, 성전환 수술을 한 권투 선수,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예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인 인물들이 책 속에서 만큼은 주인공이죠. 주인공이기만 해요. 참 보잘것없고, 처절한 삶이니까요. 그 안을 관통하는 작가의 거리. 이 작가는 거의 신이구나. 이 소설이 위대하다고 느낀 건 그 '거리감'이었어요. 구질구질한 밑바닥을 그리기로 해놓고, 자신은 쏙 빠져요. 남의 일이라고 참 무심히 써 내려가기만 해요. 너무도 아프고, 슬픈 이야기여서 쓰기로 해놓고는, 내내 그렇게 건조할 수가 없어요. 일본 작가들에게서도 많이 보이는 거리감이죠. 함부로 흥분하고, 몰입하지 않는 태도. 일본 작가들에 대한 제 평가는 박한 편이에요. 일본 작가들은 몰입도 가능하지만 자제하는 걸까요? 몰입이나 감정의 분출에 장애가 있는 걸까요? 이런 의심이 들어서요. 감정 표현이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전통이 그대로 흡수된 작가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먼저 흥분하고, 이래도 안 울어? 북 치고 장구 치는 작가들보다야 훨씬 보기 편하긴 하죠.
에밀 아자르는 습기 가득한 곰팡내의 기구함을 딱 1미터 밖에서 지켜보도록 독자들을 밀어내요. 어쩌면 가장 정확한 거리를 지정해 준 걸 수도 있죠.
모모는 창녀에게서 태어난 아이예요. 열 살일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죠. 정확한 나이는 몰라요. 로자 아주머니가 모모를 거두죠. 매달 보내주던 생활비가 끊기지만 모모를 내쫓지 않아요. 이미 가족이니까요. 늙고, 병든 로자 아주머니에게 모모는 든든한 아들이기도 했으니까요. 모모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찾아온 남자에게 그래서 거짓말을 하죠. 이 장면은 딱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서요. 자신의 아이를 찾는 친부. 아이를 돌려주고 싶지 않은 , 자신의 친아빠일 수도 있는 사람을 생전 처음 보는 모모의 시각이 너무도 치열하게, 또 치열하지 않게 그려져요. 그 극단적인 온도차가 한 장면에 다 있어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죠.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죠. 한 사람, 두 개의 이름.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콩쿠르 상'을 수상해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다시 콩쿠르상을 받게 되죠. 그가 죽고 나서야 콩쿠르상 수상작 '자기 앞의 생'의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임이 세상에 알려지죠. 콩쿠르 상은 한 작가가 두 번 받을 수 없는 상이었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만 두 번을 받았어요. 왜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을까요? 세상의 권위가 늘 정확한 척도는 아니니까요. 그는 왜 자신을 숨겼을까요? 세상을 조롱하고 싶었던 걸까요? 과거의 자신을 끊고, 정말로 새로운 작가로 태어나고 싶었던 걸까요? 그는 예순여섯 나이에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해요. 천재적인 작가는 평범한 삶이 더 힘든 걸까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걸까요? 참고로 그의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도 강력 추천합니다. 오히려 같은 제목의 소설보다 다른 작품들이 더 강렬하더군요. 가끔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밀도가 높아요. 저에게 동급의 작가들이 몇 명 있어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마거릿 미첼, 서머싯 몸. 끝장을 보는 작가들. 그중에서도 '자기 앞의 생'이 더 와 닿는 건, 모든 슬픔을 섭취한 후에 조금씩 토해내는 체화의 완결성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25년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겠지만, 안 읽어 보신 분들은 꼭 읽어 보세요. 다시 읽어 보시면,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지실 거예요. 평생 두고두고 읽으려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언제 글을 다 썼지? 글쓰기의 완벽한 몰입을 꿈꿔요. 네 여전히 어림도 없죠. 그 과정이라고 믿으면서요. 조금씩 조금씩 성장함을 믿으면서요. 매일 쓰고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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