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학교의 문화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이나 학교급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경기도의 경우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일반적으로 한학교에 5년까지 근무할 수 있습니다.즉, 한 학교에서 5년정도 근무를 했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학교를 떠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옮긴 학교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교사나 교장, 교감이 별차이가 없습니다.다 사람 사는 곳이니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서로 적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학교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고, 학교장의 경영 방침이나 마인드에 따라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또한, 학교가 속한 시군 지역의 분위기나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주거환경의 상황도 학교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물론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의 분위기도 학교의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변수이기도 합니다.
제가 올해 옮긴 학교는 나름 예술에 관심을 갖는 학교로 교실 복도에 미술 전공자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들이 교실복도나 계단 복도 등에 그려져 있더군요. 어떤 그림들은 어린 왕자의 삽화를 그려놓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아무 생각 없이 그림들을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어느 한 구절이 씌여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난 석양이 정말 좋아. 가서 석양 보자…”
“그러려면 기다려야지…”
“뭘 기다려?”
“석양을 기다려야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중-
석양을 기다려야지. 하지만, 석양을 바라보기를 좋아한 어린 왕자는 왜 석양을 기다려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에서는 그저 의자만 뒤로 조금씩 옮기면 연달아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어린왕자는 하루에 43번이나 해가 지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석양을 보기 위해서는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지구인들에게는 말이죠. 하지만 소행성 B612호에 사는 어린 왕자에게는 '의자를 뒤로 조금만 옮기면' 되는 일이지요.뒤로 뒤로 의자만 옮긴다면, 하루에 얼마든지 몇 번이고 석양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소행성이아니라 지구니석양은 하루에 한 번만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정말 석양이 더 보고 싶었다면, 의자를 뒤로 더욱 멀리멀리 옮겼다면, 석양을 더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도저히 어쩔 수 없습니다."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싑지만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지나간 많은 순간들 중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려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었고,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고,찾아봤다면 혹시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생각과 내가 만들어낸 한계로 인한 결과일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일들 가운데에,
혹시,
'의자를 조금만 뒤로 옮겼으면'
'생각을 조금만 뒤로 옮겼으면'
'마음을 조금만 쉬로 옮겼으면'
할 수있었던 일들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양보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이해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지구는 어린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해가 지는 장면을 하루에한 번 밖에볼 수없다고생각했던 답답한 지구인이 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