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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Nov 10. 2024

스치는 인연의 수

내 전화번호는 휴대폰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까?

휴대폰에 물이 들어갔습니다.

아니, 정말 '어리석게도' 휴대폰을 수영복에 넣고 '자신 있게' 물에 들어갔습니다. 지난여름 가족들과 모처럼 물놀이를 갔을 때 일입니다. 올해 들어 새로 산 휴대폰이 할부도 안 끝났는데 침수가 된 것입니다. 메인보드, 액정, 각종 부품 등을 수리하려면 거의 90여만 원. 이건 뭐 차라리 새로 휴대폰을 하나 사도 될 만한 비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대부분의 데이터를 원래대로 복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찍었던  사진들과 동영상들, 각종  문서파일, 습작으로 쓴 글들,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둘째가 태어나고 찍었던 사진들과 동영상을 온전히 살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평소 백업이라도 잘해둘걸...' 하는 늦은 후회가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너무 비싼 비용으로 인해 수리도 못하고 데이터도 못 구한채 쓰린 속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잠들기 전까지 침수된 휴대폰과 전에 쓰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불현듯  낮에 들렸던 A/S센터 직원의 '휴대폰 보험'이라는 말이 생각났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나 하고 휴대폰 요금 납부 내역을 검색을 해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 파손 보험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수리를 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다시 A/S센터로 당당하게 수리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수리를  맡기고 한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수리를 마친 휴대폰을 건네받았습니다. 다시 태어난 휴대폰! 겉케이스며 액정, 메인보드, 각종 부품 등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것은 다 교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쳤다기보다는 휴대폰이 새것으로 바뀐 것에 더 가까웠죠. 암튼, 큰돈을 절약하게 되어 마음은 날아갈 듯했습니다.


데이터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사진, 동영상, 그동안 썼던 글 들과 각종 전화번호 등. 특히 전화번호를 다 살리지 못하다 보니, 머릿속으로 기억하지 못해 휴대폰에 입력을 못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리 이후 연락은 뜸했지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전화가 오면 "누구세요?"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살짝 서운한 마음도 감지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순간 "아차!" 하며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리미리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죗값(?)을 치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의 얼마 안 되는 인맥들마저도 '기억할 수 있는 전화번호'의 사람들과 '기억할 수 없는' 전화번호의 사람들로 나뉘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몸 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도종환, '꽃잎인연' 중-

도종환 님의 시를 읽었습니다.

문득 우리가 살면서 변함없이 늘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몇 개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함께 사는 남편이나 와이프,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 전화번호도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휴대폰의 단축키나 저장된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잊고 싶은 사람들, 오래된 인연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사람전화번호는 아주 간단하게 휴대폰에서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어쩜 나의 기억과 마음속에서도 말이죠.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기억하고 있어 꾸역꾸역 휴대폰에 저장을 합니다만. 얼마 전까지 매일 같이 만났던 사람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늘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던 친구들, 돌이켜보면 나름 험난한 교직 생활을 잘 이어가게 도와주었던 선배들, 나를 존경까지 한다며 언제까지나 따라다니겠다던 후배들의 전화번호들. 어쩌면 지금쯤은 그들의 휴대폰에 제 전화번호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휴대폰도 휴대폰 침수나 휴대폰 파손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부터 새로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사람들보다

 하나씩 둘씩 지우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많아짐을 느낍니다.

 제가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있는 순간, 어쩌면 그 누군가도 역시 제 전화번호를 지우고 있을 테지요.


휴대폰으로 한바탕 소동을 겪으며 생각합니다.

지금껏 내 몸 끝과 마음을 흔들고 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기러기 수만큼일지 보름달 수만큼일지...

어쩌면 지금껏 휴대폰 바꿀 때마다 살아남는 전화번호 수만큼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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