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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Oct 29. 2024

토스트가 탔다

토스트가 탔다. 사랑이 탔다. 탔다.

Y의 시선.


조식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것도 공짜 조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먹지 않고 호텔을 나서면 괜히 후회가 든다고 늘 K는 말했다.


토스트?


벌써 K는 음식을 담은 접시를 두 개나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좋지.


난 늘 그렇듯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먹지는 않겠지만 궃이 아침부터 K의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 K를 쳐다봤다. K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토스트를 골랐다. 집게로 식빵 두 조각을 하나씩 식빵 전용 오븐에 넣고 구웠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 구워진 식빵이 성에 차지 않는지  한 번 더 오븐에 구웠다.


좀 탔네.


K는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건네며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 가끔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내게 미안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늘상 짓던 표정이다. 가끔은 정말 미안한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


괜찮아. 더 맛있어 보이네.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토스트를 집어 들었다. 먹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오늘따라 날 쳐다보는 K의 시선이 느껴졌다. 빵 옆에 같이 놓여 있던 버터와 딸기잼을 빵에 발랐다. 버터와 잼 덕분에 토스트는 그리 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맛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토스트를  한입 베어 씹고 있으니 생각보다는 먹을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스트가 좀 탔네.

토스트가 좀 탔네.


토스트를 두 번째 베어 물었을 때 아까 K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토스트가 좀 탔네... '. 그 말은 토스트가 좀 타기는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내가 먹을지 말지를 물어보는 말이었을 것이다. 문득 만약 K혼자 있었다면 이걸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는 평소 설탕을 비롯해 가공식품이나 붉은 살 고기 등 자신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되면 절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당연히 탄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탄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오래되었다. 평소  삼겹살이나 고기조차도 탄 것을 먹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렸을 때는 밥이며 고기며 튀김 등 심심치 않게 태운 음식을 먹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먹을 것은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워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토스트가 탔다.

토스트가 탔다.


K는 왜 내게 타버린 토스트를 권했을까?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평소 탄 것은 입에도 대지 않는 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예전 같으면 내가 음식을 먹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먹는 것을 계속 쳐다봐서 내가 뭔가를 먹을 틈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늘은 그저 나와 상관없이 먹고만 있다. 오히려 지금은 내가 K가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아, 저 사람은 음식을 씹고 먹을 때 저런 표정을 짓고 있구나 하며 내가 구경하고 있다.


사랑...


지금껏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랑이라 그리 화려하거나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여행 가고, 아침에 혼자 눈 뜨는 일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때때로 아프거나 병원에 갈 때는 위로도 필요했다. 그래서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K였다.


연애를 시작하고 K는 얼마나 살가웠는지 몰랐다. '아, 이런 따뜻한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이렇게까지 날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새로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나도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 아침 토스트가 탔다는 걸 말해주기 전까지는...


토스트가 탔다고.

토스트가 탔다고.


가끔은 나의 감정을 나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꿈에서 깨어 난 기분이다. 토스트가 탄 것이 K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일부러 타버린 토스트를 권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토스트를 다 먹고 나면 K에게 말할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고. 여기까지라고. 아마도 K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방금 전 봤던 그 표정,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나도 K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K와 비슷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니까. 이 토스트를 다 먹고 나면.


토스트가 탔다.

사랑이 탔다.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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