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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Nov 16. 2024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은 처음부터 나를 향하고 있었다.

패스트 푸드점으로 들어갔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딸아이를 수학학원에 밀어 넣고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들어간 학원 근처 패스트푸드점. 빨간색 출입문을 열자마자 경쾌한 음악과 광고가 한꺼번에 귀들어왔다.


   "고품질 원두만을 사용해

    향과 맛이 뛰어난 따뜻한 아메리카노"


패스트푸드 직원들의 영혼 없는 환영 인사 멘트와 광고 음악을 들으며 빨간색 키오스크 앞에 줄을 다. 요즘은 어느 패스트 푸드점을 가던지 사람 대신 기계가, 반짝이는 키오스크 스크린이 반겨준다.


스크린을 마주하고 터치 몇 번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가성비네.' 하며 평소 가성비와는 먼 삶을 살고 있는 가장이자 아빠인 나는 큰 길가가 훤히 내다보이는 큰 창 앞자리에 앉았다.


가성비?

가성비와 관련된 집사람의 평가에 따르면 난 늘 빵점이다. 매번 인터넷으로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을 단지 싸다는 이유로 여러 개 주문하곤 물건들을 다쓰기도 전에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리기 일쑤라고. 심지어  식당에서 외식할 때도 사람수보다도 많은 양의 음식을 인심 쓰듯 주문하곤 결국 남긴다고 말이다.


주문 번호를 호출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메리카노 한잔을 플라스틱 쟁반에 덩그러니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요 며칠 이상 고온으로 겨울치곤 따뜻한 날이 많았는데, 오늘은 모처럼 겨울다운 날씨다, 춥네 생각하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했다.


창밖을 보니 한가한 평일 오후라서 그런지 아니면 추운 날씨 탓인지, 지나다니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따금 눈에 띄는 사람들도 종종걸음으로 앞만 보고 지나치며 금세 멀리 사라진다.  



문득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60중반에서 70세 정도? 넉넉하게 큰 듯한 검은색 바지와 회색 패딩을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 한 손에는 방금 인근 가게에서 산 듯한 김밥 같은 점심거리처럼 보이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입가에는 언제쯤 면도를 하셨을까 싶게 흰 수염이 삐죽삐죽 나있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이따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약간은 힘겨우신 듯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다 쉬어가다를 반복하고 계셨다.


이 추위에 어디로 가시는 걸까?

집은 여기서 멀지 않으신가?

혼자 살고 계시나?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어라?' 순간 당황스럽다.

나를 지나쳐 나와는 점점 멀어져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창문에 반사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이제야 봤니?
나야, 나!
내가 너야!


물끄러미 아까부터 나를 지켜봤을 또 다른 나의 시선과 마주친 것이다. 아마도 오늘도 그랬고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세수하며 쳐다보던 얼굴이고 눈빛인데 지금은 너무 낯설다. 추운 겨울날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성비 좋은 커피 한 잔 하고 있는 중년의 안경을 낀, 넉넉한 사이즈의 검은색 바지와 회색 패딩을 입은 나의 모습이 말이다.  


지금껏 누굴 보고 있었던 걸까?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과 나의 얼굴이 겹치며 오버 랩 된다. 저 할아버지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푸른 꿈을 꾸던 청년이었고, 존경받는 직장 상사였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들이고, 사랑받는 남편이고, 아직 푸른 꿈도 꾸고 있고, 누군가의 직장 상사라는 사실에 놀란다. 어쩌면 나는 미래의 나를, 점점 나이가 들며 애써 외면하고 싶던 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까부터 보고 있었지.
넌 참 모르더라.
할아버지가 아니라 너라는 것을.
나는 너야!


느덧 창밖의 할아버지 모습은 거의 사라져 가고, 이제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과 나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만이 점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추운 겨울날 오후에 가성비 좋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나는 지금 나를 보고 있다.


뜨겁던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고,

식은 커피를 마시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눈빛은

더욱더 차갑게 식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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