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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Dec 21. 2024

그 빵집은 비법이 있어야 했다.

오래전부터 그 빵집은 맛집으로 소문이 났었다.

1. 이야기의 시작


빵집? 하필이면 왜 빵집을?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시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허니베어 빵집이 오늘부로 영업을 마쳤습니다. 아직 왜 영업을 중단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해당 빵집의 영업중단 소식에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시민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오셨나요
네, 저는 불광동에서 왔습니다.
이번 허니베어 빵집의 영업 중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TV에서 그 빵집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요즘 너무 의뢰가 없어 이번 달은 사무실 월세도 못 내나 싶었다. 그러다 모처럼 의뢰가 왔는데 그게 바로 이 빵집에 대한 것이었다. 최근 젊은 층의 인기를 한데 모았던 빵집. 인스타에 올라오는 핫플레이스 중 가장 인기였던 그 빵집. 그 빵집에 대한 뒷조사를 해달라는 의뢰였다.  정확하게는 그 빵집의 비법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탐정일을 시작하고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의뢰가 들어오는 대부분이 사람들, 회사들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이라 이제는 별로 이상하게도 비밀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네, 그 빵집의 비법이 알고 싶다고요.

비법이오?

레시피. 같은 거요!

레시피! 그냥 가서 물어보시면 되지 않나요?


레시피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탐정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는 하지만, 빵집 레시피나 찾아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체인점 같은 것을 같이 하자고 하던지... 그러나, 일단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니오. 벌써 몇 번 했죠. 그런데 요.

아, 없다고요?

아무래도 날 속이는 것 같아요.

속여요? 왜요?

그야 나도 모르죠.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암튼 비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걸 알아봐 주세요.

네.

아, 그리고 일단 500 만원 선금으로 입금드릴게요.

네? 500만 원이요?

적은가요?

아. 아, 아뇨...  충분합니다.

부족하면 말씀 주세요.

아, 네!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살짝 이 의뢰를 받아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500만 원이라는 말에 또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번에 500만 원이라니! 이건 제 발로 넝쿨채 굴러 들어온 호박 그 자체였다. 암튼 이번 달 월세 걱정은 덜었다.





2. 영업 마지막 날, 허니베어 빵집


너무 맛있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

사장님, 그런데 왜 그만하시는 건가요?

........

이 가게 이름은 어디서 따오신 건가요?

........

 가게...

이제 그만 가시죠? 영업 끝났습니다.



나는 손님인 척 빵집에 들어갔다.

오늘이 빵집의 영업 마지막 날이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몇 번 더 올 것을. 영업시간 마칠 때가 되니 사람들은 더욱 몰렸고 사장은 아예 말이 없어졌다. 바빠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낮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로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했다.



원래 사장님이 무뚝뚝하세요?

네, 좀 그러세요.

사장님 댁은 어디세요?

글쎄요. 저도 잘 몰라요.

가게는 아예 닫나요?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시 맛있게 빵을 만드는 비법이나...

죄송한데요, 이제 영업이 끝이라, 안녕히 가세요!


결국 사장에게도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정보를 얻는데 실패했다. 당연히 아르바이트생이 영업비법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을 테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에서 나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일단 가게를 나왔다. 뭐 내일 또 와야지.





3. 사장을 만나다.


다시 빵집으로 향했다.

벌써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 어치피 일찍 가도 별 수 없겠지 하는 마음에 서둘지는 않았다. 다만, 500만 원이라는 큰돈이 주는 무게 때문에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빵집에 대한 정보나 영업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은 인터넷과 해당 구청과 거래 업체 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 알아냈다. 그리고 실제로에서 빵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밀가루며 버터, 치즈, 설탕 등 각종 재료에 대한 조사 끝냈다. 그런데 막상 조사를 마치고 나니 별로 특징적인 것이 없어 의아해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제는 직접 부딪히는 것만 남았다.

빵집 근처는 어제처럼 사람들로 붐비거나 몰리지 않았다. 그냥 평소의 점심시간 정도의 한산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별 대책 없이 빵집 근처를 그냥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철커덕!


굳게 잠겨있던 빵집의 문이 반쯤 열렸다. 그리고 어제 그 무뚝뚝한 사장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반쯤 더 문이 열리며 사장은 큰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게가 나가 보이는 캐리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나는 이런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바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사장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곧바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구시죠?

아, 어제 가게 들렸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사장은 '도대체 왜 또 왔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겠지.


실은 궁금한 게 있어서요.

.......

빵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이 있을까요?

.....


사장은 잠시 나를 째려보듯 응시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지고 나온 캐리어를 자동차로 옮길 뿐이었다. 짐을 다 옮기고는 그대로 시동을 걸었다.


아니, 사장님?


 사장은 차를 몰고 그대로 출발했다.





4. 다시 사장을 만나다.


다음 날도 나는 빵집으로 향했다. 다만 어제와 비슷한 점심시간이 아니라 이번엔 저녁 시간에 갔다. 가게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잠겨 있었다. 나도 어제와 같이 가게 근처를 또 서성거렸다. 다만, 오늘은 어제처럼 가게문이 열릴 줄을 올랐다. 그냥 이렇게 헛수고를 하나보다 하고 멍하니 가게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오셨던 분이죠?

아! 사... 사장님?

왜 또 오셨죠? 뭘 찾으세요?

아... 아뇨. 전 빵 만드는 비법이...

비법이요?


사장이었다. 어제 내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던 사장. 난 뭐라도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놀랐지만, 나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다만, 탐정이라는 것을 궃이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곧 직장에서 은퇴하는데 빵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이라도 좀 알고 싶어서요. 가진 돈은 없고...

비법이라고요?

네. 이렇게 유명한 빵집인데 너무 궁금해서요. 그렇다고 제가 체인점을 가맹할 형편도 안되고...

저희 체인점이 없어요.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거죠.

....


사장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럴 땐 대학에서 연극 동아리했던 것이 살짝 도움이 되곤 했다. 양심에는 살짝 꺼림칙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연극이 다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잠깐 들어오세요.


사장은 내게 말하고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게 웬 횡재냐 싶은 마음으로 얼른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은 며칠 전에 들어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음악이 나오지 않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없고, 진열된 빵이 하나도 없다는 것 외에는...

비법이 궁금하세요?


시장은 엉거주춤 서있는 내게 의자에 앉으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을 시작했다.


네. 맛있게 빵을 만드는 비법...

없습니다.

네?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좋은 재료로 거짓 없이 만드는 성실하게 것입니다.

아...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 마음먹었던 것들을 최대한 지키려고 했고, 그걸 손님들이 알아주셨을 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마,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빵 만들기가 보람 있었죠. 선생님도 빵 가게를 하시려면 마음을 먼저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이요?

네. 좋은 재료, 거짓 없음, 성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시면 됩니다.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아...


나는 뭔가에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빵집의 비법을, 레시피를 알아내려고 했는데 무슨 인생철학 강의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은 그 외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집안 사정 등을 더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비법이 없다. 비법이 없다. 그 말소리만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네, 너무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아뇨. 저도 처음 가게 열던 때가 생각나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 아기를 듣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려 했다. 순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아. 사장님. 가게 문을 닫는 이유는 뭐세요?

이유요? 표면적으로는 우리 집에서 사용하던 각종 원자재의 가계상승 등 영업이익 악화 등으로 볼 수 있겠지만...

....

처음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초심...

아, 초심!

네. 좋은 재료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 준비할 수 있지만 거짓 없음과 성실은 돈으로 구할 수 없으니. 스스로 납득할만한 처음의 자세를 지킬 자신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죠. 그래서 그 마음을 찾아 여행이나 가려고요.


나는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초심을 찾기 위한 여행.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가는 여행. 어쩌면 성공한 돈 있는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장이 부럽기도 했다.





5. 비법

  

네, 그게 비법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음, 좋은 재료. 그러니까 유기농 재료 특히 밀가루, 버터와 치즈는 프랑스산으로. 꼭 전날 저녁에 빵 반죽을 미리 해서 숙성시키고,  오븐은 매일 청소하고 매뉴얼보다 1시간 정도 더 미리 예열하고, 각종 과일 등 재료는 최소한 3번 이상 세척하고 가급적 껍질까지 사용하도록 하고...

네. 제가 메일로 작성해서 보내드린 자료에 잘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좋은 재료와 거짓 업고 성실한...

아이고. 됐어요. 좋은 재료 안 쓰는 데가 어디 있고, 성실하지 않은 빵딥이 어디 있어요? 수고하셨어요. 뭐 별다른 게 없어 좀 그렇지만...


의뢰인과 전화를 끊었다. 실은 비법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좋은 재료. 거짓 없는 마음. 성실. 그런데 의뢰인이 원했던 비법은 이게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도 이게 아니고.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다른 가게의 비법을 첨부했고, 실제의 비법도 알려주었다. 받이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의뢰인의 몫일 것이다.


난 500만 원을 지켰다. 살짝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 역시 초심을 지키고 있다. 애쓰고 있다.

좋은 정보.
약간의 거짓은 거짓이 아님.
돈을 지키기 위한 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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