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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쌤 Dec 14. 2024

할머니는 기억 저편에서 진달래꽃 한다발을 건네셨다

내가 먼 친척중에 유명한 시인이 있다고?

할머니는 기억 저편에서 진달래꽃 한다발을 건네셨다.


1.  이야기


K는 무릎을 탁쳤다.


역시 그런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외할머니의 5촌인가 7촌인가 친척쪽으로 김소월시인이 있다는 말이. 6.25전 월남하셨던 할머니는 종종 북한에서 살았을때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누구든 외할머니네 땅을 밟지 않고는 마을에 들어갈수 없을만큼 땅이 많았고, 일제시대 당시에 이동할 때는 말을 타고 다녔고, 뽀족 구두를 신고 다녔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당시 낡은 3층짜리 건물 한채는 있었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쉽지 않은 형편이라  손자인 K로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1983년에 모든 국민들을 울렸던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출연을 하시게 되었다. 그 방송을 통해 그동안 거의 30년이상을 잊고 있던 고모를 극적으로 찾게 되셨다. 이후 두 분의 만남을 통해 서로 각자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기도 했다. 론 할머니의 고모쪽도 우리 외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믾은 것들이 증명이 되기도 했다



그래. 내가 진작에 그랬잖아?정말이라니까.



극적으로 고모를 찾은 이후 할머니의 이야기는 더욱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신바이 나셔서 이야기를 더 해주시기도 하셨다. 물론 손인 K입장에서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론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해야했지만.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인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의 먼 친적이라는데!


그럼 나도?


가끔씩 K는 글을 쓰는 생각을 했다.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자신의 이름이 딱 새겨진 책을 출판하는 꿈도 꾸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딱 국민학교 시절의 이야기이긴 했다. 사실 K는 국민학교 시절내내 글을 잘쓴다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더더욱 그런 말을 들을 상황은 생기지를 않았다. 그러다 간신히 대학을 갔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 우연한 기회


시작하세요!

누구든지 한 줄만 응모하세요!

어떤 글이든지 당신만의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잊고 있던 재능을 발굴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그날도 퇴근 후 저녁을 간단히 먹고는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고  있었다. 글쓰기와 읽기를 소재로 컨텐츠를 만드는 어느  유튜버의 말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시작...

누구든지...한 줄만., .

당신만의....

재능...

이메일...


재능, 재능이라구?K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재능? 내게도 재능이 있던가?그래? K는 왠지 응모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응모를 해야한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해당 채널의 이메일 주소를 저장하고 바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주제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글이라고는 회사에서 보고서 외에는 써본 기억이 없고, 가끔 소개팅에서 만나서 맘에 들었던 여자에게 낯간지러운 장문의 문자를 보냈던 것이 전부이니 말이다. 하긴, 그나마도 잘된 글도 아니고 좋은 인연도 아니었기에 황금같은 주말 저녁 시간에 이렇게 유튜브나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설마 한 줄을 못 쓰겠어?


내심 심기일전을 하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일단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나열해ㅈ본다.


겨울, 사랑, 추억, 시간, 옛날, 기억 ...


이것저것 일단 떠올리고는 이에 걸맞는 상황을 생각해본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옛 사랑은 늘그립고...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고 ...

세상에서 가당 힘센 것은 시간이고...

옛날에 할머니께서....


할머니? 할머니의 말씀, 김소월? 진달래꽃? K는 이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생각들을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리게 하며 뭐라도 끄집어내고 싶었다.

할머니는 기억 저편에서 진달래꽃 한다발을 건네셨다.


일단 글을 썼다.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K도 확신이 없었다. 다만 예전 할머니가 주셨던 말씀과 간단한 에피소드를 정리해서 한줄의 글과 함께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곤 그냥 누웠다. 잠이 왔다.



3. 이 실리다.


안녕하세요? 저는...


K는 두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내 글이 책에 실린다고? 물론 내 글만 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100여명의 사람들의 글중에 하나로 실리는 것이다. 당연히 저작료 같은 것은 없고  책표지 뒷편에 100의 이름 가운데 내 이름이 인쇄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는 여러 글들 중 내 글에 대한 설명이 좀 특이해서 내가 쓴 한 줄짜리 글과 그 글에 대한 설명도 같이 실린다는 연락이었다.


역시 그런가?


K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


글이 책에 실린다는 전화가 오고나서 두 달이 지났다. K는 자기의 글이 출판된다는 것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히루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우편물이 나 도착했다. 어디선 온 것일까 의아해하다 문득 두 달전 전화를 생각해내었다.


아! 맞다. 그 때 그 전화!


K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우편물을 뜯었다. 우편물 안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일 먼저 한 줄 글쓰기를 홍보하던 해당 유튜버의 사진이 실린 책표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차례를 보았다.


K,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진달래 꽃...


뭐 대강 이런 간단한 내용 내가 쓴 한즐의 글이 들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K는 혹시나 뭐가 더 있나 싶어서 책장을 몇 장 더 넘겼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더 쓴 글이 없으니 뭔가 더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4.


이게 네 글이야?

어디 나도 좀보자!

이게 다야?


K는 친구 몇 명에게 책에 있는 자신의 글을보여 주었다. 일부 친구는 놀라움의 함성을 질러주기도 했지만, 일부는 이게 다야하며 심드렁하기도 했다. 하긴 K도 처음엔 그랬으니. 암튼 K의 입장에서는 지금껏 살면서 내 이름이 찍힌 책이 나온 것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하기는 했다.


그래. 그 때는 할머니도, 할머니 가족들도 그 오빠가 그런 시인인줄 몰랐지. 그냥 글도 쓰고 시도 쓴다고 해서 그런줄만 알았지. 그런 유명한 시인일줄은...


K는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문득문득 더 잘 떠오른다. 가끔은 꿈에서도.




6. 이다.


시작은 그냥 그랬다. 뭘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기력한 삶속에서 뭔가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먼 친척중 유명한 시인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K에게는 부담도 되지는 않는다. 아무도 연관성을 따지고 있지도 않으니.


그냥 써보자.


K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책을 책장 가장 가운데 두었다. 그책 엎에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 꽃도 같이 두었다. 마치 거리의 유명 맛집에 기웃거리며 새로 차린 식당 같이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염치 불구하고 할머니가 보셨으면 좋아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며 책을 두었다.


요즘은 집에만 있네?

어디 안나가니?


오랜만에 집에 들린 엄마가 한마디 했다. 그냥 그렇하며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내방에 들어온 엄마는 책장에 있는 책들과 나를 번길아가며 말했다.


이 책이구나? 어, 이 책도 있네?


엄마는 내 책과 시집 진달래 꽃을 꺼내들었다.



엄마도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봤던 책인데...

 .....

할머니도 이 책 정말 좋아하셨어. 김소월시인이 머니의 아마 5촌인지 그랬을 걸?

....


엄마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 뭔가 전설 같은, 그래서 더 신빙성은 없어 보이지만  나름 산역사와 증거는 있는. 그래서 살짝 뭔가 나도 하는 기대감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가 늘 그러셨어. K 너는 김소월을 닮았다고. 언젠가 꼭 가 좋은 글을 쓸거라고.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런 말을 하셨나? 살아생전 글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것도 보여드리지도 못했는데. 암튼 그러셨구나.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K는 다시 책장에 놓인 책을 바본다. 진달래. 할머니가 건네준 진달래 꽃 면서 또 몇 자 적어본다.


그래. 써보자.


할머니는 기억 저편에서 진달래꽃 한다발을 건네셨다.


난 그 꽃을 받아 꼭 껴안았다.

꽃 향기에 눈을 감았다.

진달래다.

글이다.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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