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홈케어 의상착용 미리 보기에서 제공하는 파란색 옷과 신발을 선택했다. 평소 같으면 검은색이나 진청색을 고르겠지만 유난히 화창한 날씨가 될 거라는 홈케어 일기예보의 추천에 마음이 흔들렸다.
파란색이 준비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J는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거실 가운데 대형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J가 선택한 파란색 정장과 신발이 보였다. 그리고, 그 정장과 신발을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와 배경을 가상으로 설정하여 볼 수 있었다.
음... 괜찮은데?
J는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해했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가서 홈케어 의상착용 코너로 이동했다.
홈케어 의상착용 시스템을 작동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5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J는 아까 자신이 고른 것과 동일한 옷과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가상공학이라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나 간단하게 1회용 옷과 신발을 가정에서 직접 제작해 입을 수 있다. 새삼 J는 어린 시절 옷 갈아입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엄마나 아빠가 옷을 입혀주던...
복장 착용이 완료되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옷 입기를 마친 J는 현관문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차장 지하 3층에 도작하니 벌써 우리 차케어 시스템이 반긴다.
어서 오세요. 오늘의 날씨는...
우리 차 시스템에서 엘리베이터 앞에 차를 대놓고 있다. 내가 다가서다 자동으로 뒷문이 열린다.
학교로...
학교로 출발하겠습니다.
자동차 문이 닫히며 우리 차 케어시스템이 경로를 파악한다. 잔잔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들려온다. 내가 늘 듣던 아침을 여는 음악. 이 음악이 끝나기 전 나는 학교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자동차는 우리 차케어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경로에 따라 무인 시스템으로 운행을 한다.
그러고 보면 거의 30년 정도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했던 기억이. 지금이야 누구도 핸들을 직접 잡지도 않고, 대부분의 자동차는 핸들도 없지만. 그때 2024년 즈음인가 인공지능, AI, 융합과학 등 갑자기 정보분야에 혁명적인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물론 코로나 19라고 하는 시기의 영향도 있었다. 지금이야 코로나 25까지 겪었고 아무리 아파도 기꺼해야 약국에서 알약 몇 개만 먹으면 해결되지만 말이다.
J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너무 좋다. 역시 오늘은 파란색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파란색. 파란 하늘, 파란색자동차, J는문득 처음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다들 자동차 핸들을 잡고 운전했다. 테슬라였나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의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던, GhatGPT, 각종 AI, 디지털교과서 등이 나오면서 모든 것들이 변해가던 때가 그 시절이었다. 정말이지 아직은 기계식이나 레트로 감성도 있던 시절이었다.
아! 계엄령도 있었지!
J는 순간 무릎을 쳤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계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세계 최고의 문학, 문해력의 나라가 되고 있었다. 이미 로제나 BTS로 인해 K -culture가 세계의 대중문화의 기준이 되었고. 그런데 정말 황당한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망쳐버렸다. 계엄령 선포라는 웃지 못할 이벤트 하나로 대한민국은 한순간에 국제적인 신뢰도가 떨어지고 국제적으로 우스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계엄령 해프닝 이후 용기 있는 시민들과 정치인을 중심으로극적으로 정권 교체가 되었다. 그 후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고자 헌법도 개정하며 오늘날의 시민대표제로 변화하며 권력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K 정치 시스템이 갖춰지긴 했지만.
정치라니...
J는 순간 피곤해졌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 정치는 왠지 공부만 잘했던 나쁜 어른들의 잔치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2054년인 지금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만 지금은 국제정치케어시스템, K 정치시스템도 있으니 운이 좋거나, 순간의 인기에 영합해 어쩌다 정치 지도자가 되는 일을 불가능하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00 초등학교입니다.
J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올초 부임한 00 초등학교. 모처럼 일찍 오니 기분도 좋았다. 교장실로 향한다.
J의 말에 따라 원두가 갈리며 커피가 추출된다. 어느새 교장실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찬다. 에스프레소를 받이 들고 창밖을 바라본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모니터에는 오늘의 실제 등교 학생 현황이 뜬다. 200명 등교, 300명 재택 수업, 교사도 대략 절반 정도만 출근을 한다. 실은 J도 오늘 출근을 할까 말까 하다 나왔다.
옛날에는 무조건 출근을 했었다는데...
J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왜들 그때는 그렇게 융통성도 없고 비효율적이었는지... 그래서 공무원, 특히 교사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흔들곤 했었다. 하지만, 교권이 획기적으로 확립되는 교원 특별 우대법이 만들어면서 교원의 급여 2배 인상 및 각종 복지가 향상되었다. 자연스럽게 교사가 의사나 변호사보다 선망하는 직종이 된 후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인구 감소로 대학을 무상으로 골라가는 지금도 교대나 사대의 인기는 가히 상상 초월이다. 당연한 것 아니야!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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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선생님! 뭐 하세요?
네...
설마 졸고 계시는 건가요?
네?
J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반 K선생님이다.
여기는 어딘가? 아, 내 교실?
내 교실. 햇빛이 가끔 들어오는 나의 교실. 곧 있으면 아이들이 몰려들 나의 교실. 학부모들의 민원이 끝없이 밀려드는 나의 교실. 업무와 스트레스로 정신없는 나의 교실. 퇴직을 꿈꾸는 나의 교실. 매일 출근길에 퇴근을 꿈꾸는 나의 교실. 매 순간 퇴직을 생각하는 나의 교실. 내 것 같지 않은 내 교실. 내 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