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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02. 2019

아빠의 솔직함이 좋았다

이제는 내가 아빠를 사랑할 때가 되었는가

남편이 출장을 갔다. 필리핀에서 2주 그리고 한국에서 1주일 일정이었다.

나도 가끔 한국에 가봐서 알지만 한국에 가면 그처럼 바쁠 수가 없다. 업무들을 볼일이 많기 때문에 사실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것도 남편 혼자 가는 출장이기 때문에 분명히 사무만 보러 다닐 것이다.


“엄마. 이번 주에 배 서방 한국으로 가요. 일주일 있다가 인도로 들어올 거야.”

“그래? 일주일이면 시간 금방 지나가겠네. 그냥 배 서방한테 집에 내려오지 마라 그래라. 거 바쁜데 이까지 내려오려면 또 얼마나 신경을 쓰겠노.”

엄마는 벌써부터 남편 부담스러울까 봐 걱정이다. 우리 집안의 고질병이다. 남 불편하게 하는 거 싫어하는 병. 그런데 옆에서 반기를 드는 목소리가 있다.

“그래도 내려와야지. 얼굴 한번 보고 가야지. 그게 정이지.” 아빠였다.

그러자 엄마가 곧바로 받아친다.

“아이고. 뭘 배서방 바쁠 텐데 부담을 줘요. 암튼 당신은 참. 안 그래도 감기도 걸렸다더니만 뭘 내려오라 그래.”

“거참. 당신은 저번에 아들도 추석 때 내려오지 말라고 말라고 그래서 결국 못 내려오게 해 놓고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얼굴 보면서 만나면서 정을 나누는 거지.”


나는 엄마 아빠의 대화를 그저 웃으면서 듣고 있었다. 난 항상 엄마 아빠의 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 말다툼이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사랑의 말다툼이니까.

“아. 알겠어요. 엄마 아빠. 알아서 잘하도록 이야기하겠습니다.”

엄마가 다시 마무리를 한다.

“거 사돈어른도 혼자 계셔가지고 외로우실 텐데 배서방한테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라 그래라.”

그렇다. 거의 판은 엄마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혼자이신 어머님을 위해서라는 말이 꽤나 타당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얼굴도 보이지 않는 아빠가 저 뒤쪽에서 한마디 하셨다.


“나도 외롭다 그래. 장인도 외로워.”


순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아빠는 대체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싫어하셨다. 체면을 첫째로 삼으셨던 아빠였는데 갑자기 이런 솔직한 표현이 나오다니. 나는 까르르르 웃었다.


남편이 한국에 들어왔다. 그이는 공항에 도착해서 어머님과 우리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우리 집에 갈 수 있을지 봐야겠다며 확답을 주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뭐 바쁘니까. 혹시 못 가게 되면 아빠한테 잘 이야기드리면 되겠지.’


오늘 나는 남편의 카톡을 열었다. 사실 업무적인 일을 남편의 카톡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남편의 카톡은 거의 공용 카톡처럼 쓰일 때가 많다. 그런데 카톡 윗부분에 아빠 이름이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남편과 아빠와의 대화 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아주 짧지만 강렬한 아빠의 메시지가 있었다.

“배 서방 오늘내일 사이 시간 내서 한번 내려와. 얼굴 한번 봐야지. 기다릴게.”

아빠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큰소리로 웃어버렸다. 이런 거부못할 문자를 보낸 아빠 생각에.


아~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아빠라니.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않는 아빠는 엄마 몰래 사위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결국 아빠는 엄마를 이겼다.

나는 안다. 아빠가 왜 그렇게 남편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아빠는 항상 남편이 혼자 한국에 나가서 집을 방문할 때면 용돈을 두둑이 챙겨 주셨다. 남편이 오기 전에 아빠는 시내 은행에 가서 사위를 줄 현금을 찾아 놓으신다.

공사 현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그냥 두시라고 이야기해도 꼭 필요할 때 쓰라며 남편의 주머니에 찾아 두었던 용돈을 넣어 주시는 아빠.

아마. 지금도 아빠는 봉투에 넣어둔 현금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배서방 지금 안동 내려간대요.”

“그래.” 아빠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간결하게 문자를 보낸다.

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전 아빠가 왜 이렇게 좋은지”

그러자 아빠가 말한다.

“해옥아. 아빠 좋와하지 마라. 나중에 너집에 살로 갈나.”

서툰 실력으로 문자를 누르고 계실 아빠 모습이 상상이가 난 계속 웃어댔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아버지 ^^”


예전에는 제일 무뚝뚝하고 엄하던 아빠였는데.

요즘은 아빠가 사랑스럽게 보인다. 이제는 내가 아빠를 사랑할 때가 된 것인가.




♡아빠가 이기긴 했지만 엄마도 사위 온다고 분명 신이 났을 거예요. 그게 부모님 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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