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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07. 2019

사춘기 아이를 보며 나를 기억한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나는 부모님을 기억한다

“엄마. 왜 뱅골리 어를 배워야 해요? 나는 지금 뱅골리 수업도 없는데요.”

“성민아.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기회야. 지금 배워 놓으면 분명 쓰일 때가 있을 거야.”

“싫어요. 나는 힌디어 공부하는 것도 싫고 뱅골리 공부하는 것도 싫단 말이에요. 한국어 공부는 안 하면 안 돼요?”

성민이가 인도에 온 것이 한국 나이로 4살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가 13살이 되었다. 

처음 인도에 도착해서 유치원을 다닐 때 아이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성민이가 5살 때쯤 우리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었다. 

그때 성민이가 아는 말은 두 문장밖에 없었다.

“I am tired. I am sleepy.” (저 피곤해요. 저 졸려요.)

성민이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유치원 선생님께 자주 이 말을 쓰고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9년이 지나서 7학년이 되었다. 

인도에서 9년을 생활한 아이들은 한글보다는 영어를 더 쉬워했고 엄마 아빠보다도 힌디어를 잘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지역 언어인 뱅골 언어도 조금 사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성민이에게는 사춘기가 찾아왔나 보다.

예전 같지 않게 부쩍이나 짜증이 늘었다. 특히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불평을 많이 늘어놓는다. 당연한 모습이다. 이제 13살 아이에게 미래에 필요할지 모르니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워 둬야 한다는 말이 얼마만큼이나 설득력 있을까? 나는 아이를 보면서 아주 오래전 나를 기억했다.


중학교 때였나 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오랜만에 집에 갔다. 방학이었는지 매 달 주말에 가는 외박 때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이유 없이 아빠가 미웠다. 엄마와도 부딪히긴 했지만 아빠가 그냥 싫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빠가 싫었는지 매일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싫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짜증 났고 듣고 싶지 않았다. 

며칠 집에 있는 동안 아빠와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내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는 날. 아빠가 나를 데려다주셨다. 안동에 그 많은 택시 중에 하나인 아빠의 택시. 아빠는 그 택시 운전기사였다. 아빠는 말없이 택시를 몰고 기차역으로 향하셨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아빠 택시 중간에 붙여져 있는 후원금 통에서 짤랑이는 동전 소리가 가끔 들렸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지랖이 아주 넓은 사람. 

아빠는 그 후원금 통을 항상 달고 다니셨다.  손님들에게서 받은 후원금을 모아서 동료들과 함께 심장병 어린이를 도와주는 일을 하곤 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런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아빠에게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 

택시 안에 적막이 흘렀다.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을 때 아빠가 내게 물었다.

“아빠가 그렇게 싫으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아빠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싶었다. 


성민이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죄송해요.”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 성민아. 우리 서로 맞춰가면서 노력하자.”

아이는 내 얼굴에 웃음을 보고서야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참 아이의 뒷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를 생각했다.

아무 대답하지 않고 택시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향하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아빠를 기억했다.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얼마만큼 아빠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마음이 무척이나 흔들리던 그때의 나를 아빠는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다독여 주셨던 걸까. 어떻게 기다려 주셨던 걸까.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나는 부모님을 기억한다. 

내 감정에만 집중했던 그때.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나를 그래도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던 아빠를 엄마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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