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는 Sep 03. 2023

#29 교육자를 꿈꾸기까지, 꾱님의 서사

피하지 않고 마주한 고통의 결과



#부모님의 이혼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아버지는 주당에 담배도 매일 한 갑 이상 폈어요. 그게 원인이 돼서 이혼 후엔 다리까지 절단해야 했어요. 이혼할 때 자식들 찾지 말라고 집이고 뭐고 다 주고 왔는데. 일은 안 하고 병원비는 나가야 하니 집까지 처분하셨더라고요. 폭행도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주먹에 코 뼈가 부서져 지금도 코로 숨을 잘 못 쉬세요.      



#아버지와의 재회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인가, 하교하는데 정문에 아버지가 오토바이 세워놓고 계시더라고요. 함께 시간 보내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묻더라고요. 재밌었냐고. 그냥 느낀 대로 재밌었다 했고, 이후부터 매주 아버지가 데리러 오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머니 감정이 좀 복잡하셨을 텐데, 그땐 몰랐어요. 주말엔 아버지 집 가고, 평일에는 어머니 집에 있고. 이런 생활이 반복됐어요.



#아버지의 죽음 

  4학년쯤 돼선 점점 아버지 집에 가는 게 재미없고, 매번 가는 게 귀찮았어요. 아버지는 술 담배만 계속했고, 할 수 있는 건 컴퓨터 게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 주는 그냥 집에 왔어요. 엄마가 아버지 집 안 가냐고 물었는데, “몰라. 그냥 안 갈래.” 하고 쉬었죠. 며칠 뒤 새벽에 큰누나가 저를 깨웠어요. 잠도 덜 깨 비몽사몽한 채 따라 나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더라고요.     



#죄책감과 무의식

  경찰에게 설명을 들었어요. 돌아가신 경로나 위치 같은 걸 구체적으로요. 제가 아버지 집에 가지 않은 날 돌아가셨더라고요. 맞은편 집에 계신 분이 증언해 주셨어요. 그날 집 앞에 넘어져 계셨대요. 다리가 안 좋아 일어나질 못하고 문에 기대 있는 걸 보셨대요. 놀라서 일으켜드릴까 물으니 좀 있으면 아들 온다고, 괜찮다고 했대요. 근데 시간이 흘러도 제가 안 오니까 혼자 일어나시다가 넘어지셨는지. 그대로 쓰러져 돌아가셨대요. 어려서 어떤 상황인지 완전히 이해를 못 했는데, 무의식중에 했던 것 같아요. ‘그날 내가 갔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요.      



#불안의 발현과 따돌림

  틱장애가 생겼어요. 충격이 몸으로 나타나더라고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을 깜빡였어요. 길 가던 사람도 알아볼 정도로 과하게요. 왕따를 당했고, 중학생쯤 되니 사람으로 보지 않더라고요. 당연히 옆에 두지 않아야 될 사람으로 여겨졌죠. 한 번은 길 가던 사람 둘이 지나가는데, 저를 벌레 보듯 보곤 옆 사람에겐 사르르 웃으며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참 사람이 이중적이라 느꼈죠.     



#스스로 시도한 고독의 해결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고독하게 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해결해야겠더라고요, 살려면. 그렇겐 살긴 싫어서.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 했죠. 근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원인이 아버지잖아요. 그래서 무작정 아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아프더라고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안 들어갈 수 있단 걸 느꼈어요.         


        

#회피해온 고통의 직면

  회피해오던 것들을 직면했어요.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는지, ‘그날 갔더라면 아버지가 살아계시지 않았을까’하는 후회에 대해서도요. 에너지를 다 쓸 때까지 생각하고 한참 회피하고, 에너지가 생기면 다시 직면했어요. 회피하고 직면하고, 회피하고 직면하고. 그렇게 5년을 반복했더니 고3 끝 무렵쯤, 증상이 거의 완화됐어요.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이게 내 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단 걸요.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죠. ‘내 잘못이 아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 



#환영받는 억울함과 욕심

  대학 입학할 땐 술만 안 먹으면 문제없을 정도로 거의 증상이 없어졌어요. 동아리에 갔는데 사람들이 엄청 반겨주더라고요. 좀 억울했어요. 다른 사람들한텐 일상이고 당연한 거였는데, 전 스무 살이 돼서야 느껴본 게요. 근데 욕심도 났어요. 이제부터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되니까.      



#소통의 연습과 나아감

  처음엔 사람과 소통을 해본 적이 없으니 대화 방향조차 못 잡았어요. 그래서 거의 얘기를 들어줬어요. 조금씩 친해진 사람들 덕에 관계를 연습했고, 나아가선 도움 주고 케어도 해줄 수 있게 됐어요. 상처를 직면하는 연습을 했던 게 다른 사람 마음보는 데 도움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상처가 잘 느껴지고, 감당도 잘 되고 극복하도록 돕는 법도 알게 됐죠. ‘이 상처를 어떻게 돌려 돌려 볼 수 있게 해줄까’고민했어요. 저는 너무 직면하려고만 했는데, 그게 너무 아프니까. 조금 완화해서 돌아볼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고,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줬죠.                      



#사라진 원동력, 다시 찾아가는 삶

  원동력을 찾아가고 있어요. 군대 갔다 와서 처음 상담받으며 송별 작업이란 걸 했어요. 이별의 마지막 단계인데, 좋은 기억만 남기는 거래요. 저처럼 상처를 원동력으로 살아온 사람은 상처가 소멸되면 배터리 빠진 로봇처럼 픽 쓰러져 버린대요. 원동력이 없어지니까요. 진짜 그렇긴 하더라고요. 열정도 에너지도 없고. 그래서 방탄하게 놀았죠. 이젠 마음잡았어요. 최근엔 커피도 배우고 운동도 시작했어요. 장애도 극복하고 고독도 느껴봤는데 다른 걸 못 하겠나 싶어요. 회피하면 더 무서운데, 직면하면 별거 아닌 게 많아요. 






언젠간 교육을 하고 싶어요.      

상처를 완화하고 

변화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그게 누구든, 어떤 방법이든지요.








죽을 땐 평온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삶.     






(인스타그램 @moduneun)






이전 10화 #28 꿈의 걸음을 걷는 공연인, Hunu님의 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