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는 Sep 03. 2023

#30 씩씩하게 운명을 살아가는, 전토끼님의 서사

지독한 가난에도 행복했던 ‘이유’




#살기 위한 이혼   

  스물여섯에 이혼했어요. 전 남편은 술 먹고 밖에서 싸우고 들어와 화풀이하고, 칼 들고 쫓아와 매일 도망 다녔어요. 다섯 살 아들이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아들만 보고 며느리 맞는 건 신경도 안 썼어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애만 두고 친정에 갔어요. 정신 차린다고, 술 끊고 돈도 번다해서 돌아가길 반복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애 두고 나왔어요. 그 후룬 남자한테 질려서 시집도 안 가고 싶고, 혼자 살려고 했죠.   


  

#폭력, 평생의 흔적

  이혼하고 스물아홉에 허리 수술을 했어요. 취직해서 회사 잘 다니는데 이상하게 허리가 아프더라고요. 3년 전에 전 남편이 잠깐 밖에 나가자 해서 따라 나갔는데, 밀쳐서 길거리에 엎어졌어요. 그대로 구둣발로 허리를 짓밟혀 기어서 방에 들어왔죠. 걷지도 못하게 아팠는데 젊어서 그런지 자고 나니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지냈는데 허리 안에 피가 뭉쳐서 물렁뼈가 눌렸다나. 수술받았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센 일을 못해요. 조금 하다 쉬어야 하고. 아직도 허리가 별로 안 좋아요. 



#10년의 흐름과 재혼

  재혼 안 하고 혼자 살려고 했죠. 근데 서른일곱 돼서 너무 좋은 사람 있다 해서 중매 서서 결혼했어요. 처음엔 안 살려고 생각했어요. 기술도 있다 하고 사람은 좋아 보였는데, 막상 시집오니 막막하더라고요. 화장실도 없는 월세살이 초가집에, 모아놓은 돈도 하나 없고. 막노동하는데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지. 그러니 안 살려고 했는데 애가 생겨서 ‘안 되겠다. 애를 봐서라도 살아가자’ 했죠.     



#남편의 징역, 굶주림

  애 아빠 징역 살았을 때 생각하면 아직 앞이 캄캄해요. 빗길에 횡단보도 건너는 여자를 치어서 다리를 다쳤어요. 입원하고 보상해 내라는데, 돈이 없어서 물어주질 못하니까 교도소에 들어갔지. 벌어 놓은 돈은 없고, 큰 애가 7살, 작은 애 3살 땐데 집에 쌀 한 톨 없었어요. 이러다 애들 굶어 죽겠다 싶어 엄마한테 5백만 원, 사촌들 돌아가며 조금씩 빌려서 구해다 줬어요. 그러기 전에도 사고 내서 남의 집 벽 부숴서 월급 없이 노동해서 모은 돈 다 물어줬지.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지. 사람이 참 좋았어요. 언제 한 번 아들이 성인돼 찾아온 적 있거든요. 그때도 또 놀러 오라고 다독여주고. 화 한 번 안 냈어요. 술 많이 먹고 집에 벌어오는 돈 한 푼 없었어도 사람이 너무 좋았어요. 애 아빠하고 딸내미 둘. 가족이랑 있을 때. 가난 속에 살아도 만나면 호호 웃고 뛰어다니고 달 구경하고 응애응애 학교 다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이별, 남편의 죽음

  애들 다 키워놓고. 죽을 고비 몇 번 넘기다 결국 갔어요. 전봇대도 박고. 한 번은 흙을 다 덮어쓰고 집에 왔더라고. 빗길에 논두렁 지나다 차가 미끄러졌대요. 그대로 차 폐차 시키고. 그 일 있고 나서 술도 끊다시피 하고 안 먹더라고. 새로운 일 배운다고 일 마치고 공부도 하고. 정신 차리려 하는데 패혈증이 와서 아깝게 갔죠. 병원 가던 날에 열이 펄펄 났어요. 큰 딸 부를까 물어보니 ‘아니 아니.’하고 눈 안 감고 있다가 큰 딸 보자마자 눈 감더라고. 그러면서도 보고 싶었나 봐요.      



#“이만하면 행복하죠.”

  울 엄마는 돈 없어서 박상 장사 다녔는데, 애 봐줄 사람 없어서  안고 다녔대요. 근데 허리 띠 살 돈이 없어서 낡은 띠 묶어서 다니다 띠가 찢어졌어요. 그대로 애가 떨어져 죽었죠. 바로 위에 오빤데 너무 안됐지. 그렇게 어렵게 보리밥 먹고 호롱불 켜놓고 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만하면 행복하죠.     



#홀로 남은 외로움, 살아감

  옛날엔 그렇게 자유가 있으면 했거든요. 혼자 산 게 벌써 12년 됐네. 예순하나에 그렇게 됐으니. 좀 외롭긴 하죠.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먼저 가니까 운명에 맡기고 살아야죠. 내 시간 보내고 청소하고 빨래도 하며 살죠. 혼자됐다고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하하하 웃고 도리도리 짝짜꿍해 주고 집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시장도 보고. 허리 아프고 좀 쉬어야겠다 싶으면 드라마 보고. “몇 시냐? 더 자면 잠꾸러기 된다.” 하고 혼잣말도 하며 시간 보내요. 딸들도 다 지들 삶이 있으니까 휴가 때 만나 놀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인스타그램 @moduneun)




이전 11화 #29 교육자를 꿈꾸기까지, 꾱님의 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