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이 필요한 어른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리뷰

by 반짝풍경

곰돌이 푸가 첫 등장한 1926년 이래, 9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곰돌이 푸는 여전히 처음 만난 시절 그대로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이 여전하고, 인기 역시 잦아들지 않고 있지요. 2018년 이완 맥그리거 주연으로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가 개봉했을 때, 곰돌이 푸의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인형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이다니! 그리고 사랑스러운 외관만큼이나 영화의 알맹이 또한 '곰돌이 푸'다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 월트 디즈니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냐!
이루기 위해 싸워야 해.
그냥 이뤄지는 건 없어.
-크리스토퍼 로빈




당신 지금 행복해? 우린 당신을 원해.
지금이 당신의 삶이야.
삶은 현재 진행형이란 말이야!
-아내 애들린 로빈






우린 '지금' '여기' 살고 있어


이 영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입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100 에이커 숲에서의 일들을 잊고, 아빠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죽 가방을 생산하는 회사의 효율관리 팀장으로 지내고 있지요. 사내 경쟁 구도 속에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집에서도 일거리를 싸 들고 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크리스퍼 로빈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필 불경기라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점. 정리해고가 예정되어 있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평가를 해야 하는 로빈은 압박을 받습니다.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가족 여행을 아내와 아이들만 보내고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구조조정을 피하고 싶은 심정으로요. 월요일에 있을 회의의 결과가 그의 평가에 따라 영향을 받을 테니까요.


그가 처한 현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세계가 100 에이커 숲입니다. 그곳에서 푸우는 자신을 부르는 어린 시절의 로빈 목소리에 이끌려 숲 밖으로 나오고, 성인이 된 로빈과 해후합니다. 사실 100 에이커 숲은 로빈의 동심을 상징합니다. 로빈이 메마른 어른의 세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딸이 그가 학생 시절 푸우를 그린 낙서를 발견하거나, 그가 여전히 동물 친구들들에게 받은 선물주머니를 간직한 사실에서 그의 동심이 소멸이 아닌 잠들었을 뿐임을 짐작할 수 있어요. 모든 성인의 내면세계에는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술계 종사자이거나, 흔히 '키덜트'로 알려진 특정 부류의 성인들은 내면의 아이와 공존해 살아가지만, 보통 어른 대부분은 동심을 내면 어딘가에 던지거나 숨겨 놓지요.




퇴행에 긍정적 기능이 있다고?


프로이트는 퇴행을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을 받게 되었을 때 잠시 또는 장기적으로 자아가 이전 단계로 돌아가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 하는 방어기제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사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24시간 중 일정 시간을 '수면'이라는 정상적인 퇴행현상을 통해 원기를 회복합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 형태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기호식품인 껌을 씹거나 담배를 태우는 행동에도 퇴행적 요소가 있다고 해요.


사실 퇴행은 신경증이 발생하는 한 요소로 프로이트가 꼽기도 했고, 심각한 퇴행은 자아가 현실을 벗어나는 상태라서 부정적으로 여겨집니다. 병적인 유아 퇴행을 겪는 환자는 희귀병, 치매, 사고나 PTSD의 영향으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첫째 자녀가 일시적으로 유아 퇴행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크리스(Ernst Kris)의 '자아를 위한 퇴행' 개념 덕분에 퇴행에 대해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뤄지게 되었어요. 그는 이것이 자아의 통제 아래에서 이뤄지고,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기의 놀라운 발명은 최초 시도 당시에 백일몽, 몽상으로 치부되거나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을 떠올려보세요. 자아가 건재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퇴행은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선물로 안겨줍니다. 흔히 '영감이 떠오른다'라고 표현하는 순간, 내면의 아이가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면 뜻하지 않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답니다. 자아의 통제 아래에서 이뤄지는 퇴행은, 방어기제나 신경증의 요소로 이해되는 퇴행과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잠들어 있는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난 길을 잃었어-크리스토퍼 로빈






하지만 내가 널 찾았잖아.
-곰돌이 푸우




우 문 현 답

"어딘가에 가야 할 때, 기다리면 어딘가가 내게로 와"-곰돌이 푸우


푸우가 말썽을 계속 피우자 석세스의 숲으로 돌려보내 놓기 위해 로빈은 푸우와 함께 기차에 오릅니다. 이미 그의 시골집에는 아내와 아이가 머무르고 있지요. 푸우와 헤어진 티거, 피글렛, 이요르, 올빼미, 캉가와 루, 토끼를 찾아주기 위해 숲으로 들어선 로빈이 어른다움에서 점차 어린 시절의 다정함을 회복함에 따라 100 에이커 숲은 안개 낀 숲에서 햇살이 화창한 숲으로 점차 변합니다. 숲을 헤매며 동물 친구들은 순서대로 되찾게 되고, 이요르가 알아보지 못하자 "내. 가. 크리스토퍼 로빈이야."라고 외치는 로빈의 선언은 상징적입니다. 그가 숲 속을 돌아다니며 흩어진 친구들을 모으 듯, 잃어버렸던 동심의 파편을 다시 맞추며 로빈은 진정한 Cristopher Robin 이 되지요. 그가 숲에서 '효율 그리고 업무를 위해서' 밀어내었던-잃어버렸던-푸우를 다시 찾은 장소는 영화 시작 머리의 푸우와 로빈이 이별하던 나무 그루터기였고, 이렇게 끊겼던 부분이 이어져 완성된 후 그는 월요일의 회의 시간에 맞춰 떠납니다.




매들린은 내 딸이야
당연히 중요하지
걔가 내 전부야
-크리스토퍼 로빈




그러면 왜 같이 안 왔어?
-루



로빈이 동심을 깨워 "크리스토퍼 로빈"다워지기 전과 후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석세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는 서류더미를 움켜쥐고 일을 하지만, 회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름 맞추기 놀이를 한답니다. 그리고 회의 중간에 불쑥 찾아온 아내가 딸 매들린이 사라졌다고 하자 회의실을 박차고 딸을 찾기 위해 나가지요. 예전이라면 상상 못 할 모습입니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정리해고로 영화가 결말났다면 진정 "어른을 위한 동화'라기에는 부족했을 듯해요. 로빈은 딸 매들린을 무사히 찾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말썽꾸러기 동물 친구들이 뒤늦게 챙겨 온 업무 서류 중 한 장을 무심결에 바라보다 회의장으로 급히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놀라운 제안을 해요. 지금까지의 판매전략을 뒤집는 발상인데요. 이후로 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고급 가방 판매에서 벗어나 다수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 사용할 튼튼한 여행용 가방을 만들어 활로를 개척하자는 것이었지요. 피라미드 형태의 사내 조직도를 뒤집어 보여주며 설득하는 그에게 회장은 오케이를 외칩니다. 덕분에 정리해고가 아니라 여행 가방의 구매층인 직원들의 소비를 독려하기 위해 유급휴가가 파격적으로 결정되었을 거라고 짐작이 되네요.



영화 끝부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중요한 것을 하게 된다'라는 대사가 곰돌이 푸우와 로빈이 오늘날의 피로한 현대인에게 넌지시 건네는 메시지 같습니다. 시골 숲을 엉뚱하게 헤매고 온 로빈이 틀을 벗어난 발상으로 회사의 경영위기를 돌파할 길을 찾아낸 것이 그 예가 되겠네요. 또한 영화 속의 앞으로는 때때로 휴가를 즐기게 될 직원들, 오늘날 "워라밸"을 외치는 직장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인가 기를 쓰고 하려고 들지 않을 때, 압박이 없을 때 창조성이 발휘됩니다.



달리다 지친 여러분, 아무것도 안 하는 하루 기획해 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리고 내면의 100 에이커 숲으로 소풍을 떠나 보세요.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숲의 날씨는 개일 것이고 더해 여러분의 머릿속도 맑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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