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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민 Oct 26. 2022

한국에서 고졸로 살아남기

안 미안해도 되는데요

나는 고졸이다.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우와, 대단하시네요.' 혹은 '멋져요.'(뭐가 멋지다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라는 반응. 다른 하나는 '......' '요즘엔 학력 같은 거 상관없잖아요?'와 같은 반응이다. 후자의 반응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저 '......'라는 몇 초간의 정적이다. 뭔가 내가 고졸이라고 말하면 몇몇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마치 고졸을 상대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교 학위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어, 대학 졸업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희귀종으로 쳐다보기 마련이다. 그렇다, 한국에서 나는 '별종'이었다.


고졸인 내가 이런 사회에서 밥을 먹고 산다는 게 어떨 땐 신기하기도 하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학력을 보지 않는 터라(막내작가는 사실상 그냥 노예를 뽑는 일이라) 다행이었다. 농담처럼 참으로 평등한 세계였다. 이곳에선 논문이 아니라 꽁트를 쓰면 됐다. 이차방정식이나 적분(고졸이라 이런 것밖에 모른다)은 필요 없었고, 그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모순적인 상황만을 끝없이 짜낼 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피 말리는 회의가 대학에서 수업 듣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리라 감히 말해본다. 물론 나는 대학을 다니지 못해봐서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나중에 대학을 나온 동료에게 물어봐야겠다. (당연히 돈을 받고 하는 이쪽 일이 더 어렵겠다고는 생각한다)


학생증이 주민등록증만큼 널린 대학 카르텔인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기란 어렵지 않다. 사실상 불편한 건 별로 못 느낀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내가 가진 작가라는 직업이 예술계라는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이다. 내가 방송작가 일을 하기 전에는 여러군데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주유소나 물류 작업, 레스토랑 주방보조(크리스마스 시즌에 시작했다가 너무 힘들어 하루하고 때려쳤지만) 등. 화장품 가게에서 인형탈 알바도 했었다. 어린 아이들이 인형탈을 쓴 내 뒷통수를 치고 도망가는데 조금 서러웠던 기억이 생각난다. 아, 그리고 유명 디스플레이 회사의 연구원 보조업무도 해봤다. '단순 아르바이트'라 그런지 고졸로서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런 일은 안 겪어서 지나고보니 다행인 기분이 든다. 


고졸로서의 고충은 방송작가가 되고 나서 비교적 최근 생겼다. 혹자는 대학을 안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현실에선 애로 사항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바로 '대학교'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대본을 써야할 때가 문제였다. 방송의 기획은 대중들의 공감을 많이 받는 방향으로 기울곤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장소로는 주시청층인 청년들의 대다수가 속해있거나 속한 적이 있는 대학교가 적합했다. 


나는 고졸이다. 그게 문제였다. 대본을 쓰기 위해서는 고증이 필요할 터인데, 어쩔 수 없이 주변에게 묻거나 아니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것과 이렇게 찾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 법. 디테일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부분들은 회의를 통해 보강해가긴 하지만, 고졸의 작가로서 꽤 난감했던 경험이었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거다. 고졸인 나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시트콤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더욱 그런 배경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어떤 등장인물의 과거를 설정할 때 대학 전공 과목이나 대학 때의 경험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졸인 나는 그런 부분들을 '상상'이나 '조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오호 통재라... 


이럴 땐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다. 대학 학위가 아니라 대학에 대한 경험 그 자체 말이다. 역시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건가 보다.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다니는 덴 다 이유가 있다. 그래도 요즘엔 대학생 브이로그가 많아져서 다행이다. 유튜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학생이 된 기분을 누릴 수 있으니까. 고졸에게 정말 다정하고 친절한 세상이다. 


방금 말한 '대학교를 배경으로 대본을 쓸 때' 말고는 고졸도 살만하다. 고졸이라고 무슨 버스나 음식점에서 출입 제한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클럽에서 못 들어오게 막힌 적은 있었지만, 그건 고졸이라서가 아니라 내 스타일(죽어도 얼굴이라곤 하지 않는다)의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고졸도 대졸과 똑같이 산다.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신용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마친 뒤 거래를 끝마친다. 가끔 고졸이라고 하면 과하게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도 다 똑같은 사람이다. 대졸이라고 뭐가 다른가? 대졸이라고 편의점에서 삼차방정식(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졸이라 이것밖에 모른다)이나 미분 적분을 쓰진 않잖는가. 고졸이나 대졸이나 똑같다. 학력에 상관없이 둘 다 1+1 물건을 살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그저 개이득을 바랄 뿐이다.

고졸   : 넌 대학 왜 갔냐?
대졸   : 돈 때문이지. 고졸보다 대졸이 연봉 높게 받잖아.
고졸   : 그래? 난 대신 일을 일찍 시작했지. 누가 더 잘 보는지 볼까?
대졸   : [잔액 : -20,000,000원. 학자금 대출] 아..      
고졸   : [주식 : -20,000,000원. 평가손익.] 아..

세상은 공평했다. 

                                                                         엄마 없는 농담, <고졸 vs 대졸> 중에서

고졸로서 정작 불편한 건 '시선'인 것 같다. 하루는 택시를 탔는데 직업이 방송작가라고 말하자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한창 나보고 '히트작'을 내라는둥, 믿는다는 둥 이야기를 하시다가 대학교는 어디 나왔냐고 묻는 것이었다.


대학 안 가고 고졸입니다.


그러자 정적이 흘렀다. 말 그대로 3초 정도 무음이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흰 머리의 기사님은 입을 여셨다.


...그럼 안 될텐데.


이어서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겠다며 조언을 주셨다. 뭐, 이런 거에는 상처 같은 것은 받지 않는다. 나름 '시간을 투자해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겠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어르신 나름대로 겻들어주셨으니까. 문제는 다음 일화다. 지금까지 납득이 안 가는 일이 몇 년 전에 있었다. 때는 복지관에서 공익으로 일을 할 때였는데, 중년의 팀장님과 함께 퇴근을 하던 길이었다. 일한지 얼마 안 돼서 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셨던 팀장님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시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라고.

'당연히' 대학을 나왔을 거라는 이 질문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하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나는 

"저는 대학 안 가고 고졸입니다."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다음 문장은 이어서 팀장님의 입에서 나왔다.


아이쿠... 미안해요.


고졸이라고 하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뭐가 미안한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단절됐다. 나는 아직까지도 뭐가 미안한 건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짐작건대 명문대를 나온 팀장님에게는 아마 '고졸'이라는 것이 나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였겠거니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때의 사과를 보고 '편견 있는 배려'라고 칭하기로 했다. 뭐, 어쨌거나 공짜로 사과를 받았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공짜 사과는 필요 없긴 하다. 그렇게 사과를 하고 싶으면 사과 대신 애플 아이폰이나 사주시던가. 나는 관념적인 사과보다 눈에 보이는 애플 아이폰이 좋다. 아무래도 고졸이라 관념적인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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