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다시 잘 찾아가면 되지-『더우면 벗으면 되지』

by 책닮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나는 여전히 고속도로 위에 있는데,

아리의 목소리만 낭창낭창 울렸다.


아들의 축구 원정게임으로 옆 도시인 경기 광주로 떠났다. 동네 운전은 내 맘대로 쏙쏙 잘하는 나름 드라이버 부심이 있는 나는, 호기롭게 차를 고속도로로 올렸다. 그것도, 아들 친구와 친구의 엄마인 아는 언니를 태우고서. 출발은 무난했다. 시간적 여유를 넉넉하게 두고 출발했기에, 최대한 안전운전에 신경 쓰며 달렸다. 지도상에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걸 보고는 어디서 빠져나가야 하나 바짝 신경을 곤두 세웠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태웠으니 실수하지 않고, 무난히 도착하고 싶은 맘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도, 옆에 타고 있던 아는 언니도 깜짝 놀랐다.

"여기라고?"

"뭐야? 어디가 경기장이야?"


아, 마치 집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눈앞이, 머릿속이 깜깜했다. 급하게 다시 목적지를 설정해 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다. 도착시간은 배로 늘어났고, 경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열심히 밟았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하여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에 집중했다.


그런데, 우회전을 하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까 왔던 곳 같은데,,,,'

그랬다. 아까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빠져나왔던 그 터널이 보였다. 또 돌아온 것이다.


'하.... 망했다.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황당한 실수의 연속에, 고속도로에서 맞이한 목적지에서 우리는 헛웃음을 토해내며 애써 괜찮은 척 서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난 괜찮지 않았다.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누가 날 좀 살려줘'라고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모르는 길을, 타인을 태우고, 그것도 어린아이들도 함께, 약속시간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라니. 얼굴이 시뻘게져서 울상을 짓고 있는 나에게 그 언니가 말했다.


"아유, 괜찮아! 다시 잘 찾아가면 되지!!! 갓길에 세울 곳이 있으면 잠깐 세워봐~"


언니는 나를 다독이며 침착하게 대처했다. 갓길에 차를 정차하고, 목적지를 새로 설정했다. 번지 주소가 아닌 '애플 주유소'라는 명칭으로. 알고 보니 고속도로가 고가 형태로 있고, 목적지는 그 아래 위치한 것이다. 번지수로는 고속도로 위가 목적지가 맞았다. 단지 하늘 위로 안내한 것뿐, 내비게이션은 틀리지 않았고, 아주 정확히 똑똑하게 우릴 데려왔다. 번지수로 검색하지 말고, 경기장 옆 주유소 명칭으로 검색하라는 공지사항을 잘못 알아들은 나의 실수였다. 목적지를 새로 설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하게 도착했다. 시작 5분을 남겨두고 도착했으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잘못 설정하고 길을 떠난 내가 참 한심하고 바보 같아 자꾸 자책하고 미안해하는 나를 언니는 다독여주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자기도 못 찾았다고, 문자로 공지를 하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오히려 고생 많았다고 나를 쓰담쓰담해주었다. 언니의 따스한 말과 아들의 멋진 골을 위로 삼아 하늘 위 고속도로로 가출한 나의 영혼을 찾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결혼 전 친구들이랑 차 타고 여행 가다 길 잘못 든 추억이 새록새록~~

얼마나 깔깔대면서 쫄깃한 긴장감이 있었는지,, 오늘 딱 그랬네, 고마워 잠깐 젊어지게 해 줘서~!"


쫄깃한 긴장감으로 젊어지게 해 줬다니,,, 어쩜 이리도 고맙게 말해 줄까,

긴장과 좌절을 넘나들던 내게 괜찮다며, 다시 잘 찾아가면 되지!라고 했던 말을 곱씹으며,

나는 그림책을 꺼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더우면 벗으면 되지』



더우면 벗으면 되지.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정도로 피곤하면 양치질도 건너뛰고 그냥 자면 되지.
살이 좀 쪘다면 살찐 친구들을 만나면 되지.


그래, 더우면 벗으면 되고, 추우면 입으면 되고, 길을 잘못 왔으면 돌아가면 되고, 또 잘못 왔으면 다시 제대로 돌아가면 되는 일인 것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그런 것 아닐까?

힘들다고 지하 100층까지 내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절과 자책만 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 쉽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

마음먹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다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변하지 않는 상황에 갇혀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생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크고 작은 역경을 때로는 살짝 점프하여 지나치고, 때로는 뻥하고 차 버리고, 때로는 두 팔 벌려 꼬옥 안아 으스러지게 하는 것이니까.

문제를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도 쫄깃한 긴장감과 젊음의 추억을 맛보았던 아는 언니처럼 '훗'하고 웃어버리고 툴툴 털어내고 일어나 현재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4단계 격상을 곧 앞두고 있는 우리, 사적 모임 금지에 등교 전면 중지라는 어마어마한 시련이 돌덩이처럼 굴러오지만, 뭐 원격 수업하면 되고, 온라인으로 만나면 되고,

집콕하며 가족들끼리 지지고 볶고 재미난 추억을 쏙쏙 찾으면 되고, 혼술 한잔 기울이며 감성을 찾으면 된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훗하고 웃으며 헤쳐나가기를 바라본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추억이 되어 또 다른 좌절을 이겨낼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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