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돈’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리적 심폐소생술을 이야기하는 정혜신 작가는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당신이 옳다』(정혜신, 해냄)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채워져 있다면 그다음으로 꼭 필요한 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코리 도어펠드도 그렇게 말한다.
주인공 테일러는 블록으로 새롭고 놀라운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까마귀 떼가 블록을 망가뜨렸다. 자신이 만든 것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 사라진다. 아이의 표정에서 세상이 무너진 듯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이에게는 얼마큼 큰 슬픔, 상처였는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그런 테일러에게 친구들이 다가온다. 처음에는 닭이 다가와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해 준다. 하지만 테일러는 자꾸만 재촉하는 닭에게 오히려 마음이 닫아버린다. 곧이어 찾아온 곰은 자신의 화를 푸는 방법을 테일러에게도 강요한다. 테일러의 입은 더 굳게 닫힌다. 코끼리는 다시 블록을 만들면 된다고 하고, 하이에나는 그냥 웃어버리고, 타조는 숨어버리라 충고한다. 캥거루는 흐트러진 블록을 그냥 치워버리자 하고, 뱀은 다른 아이들이 만든 것들도 무너뜨리자며 유혹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테일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테일러는 혼자 남았다.
그런데 그때, 그 옆으로 조용히 조금씩 토끼가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말없이 오랫동안 그저 앉아 있었다. 이윽고 테일러가 말했다.
“나랑 같이 있어줄래?”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테일러의 눈을 바라보고, 소리에 귀 기울이고, 표정을 따라 했다. 테일러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지, 숨어버릴지, 모두 치워버릴지, 복수할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그저 들어주었다.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담담하게. 시간이 지나자 테일러가 다시 블록을 만들어 볼까 하고 묻는다.
서로 마음을 나눈 둘은 어떤 블록을 완성했을까?
궁금함을 남겨둔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흔히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들어주는 편이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되면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줄 알았다. 그래야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아이의 행동에 잘잘못을 따지고, 내 방식으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로는 닭처럼 무엇이 문제냐고 말해보라고 다그쳤고, 때로는 하이에나처럼 그냥 웃어버리거나, 주로 캥거루처럼 모든 걸 치워버리곤 했다. 아이의 감정을 같이 느끼지 않고, 아이가 말하길 원하는 때를 기다려 주지 못했다. 공감이 없는 태도에 상처 받았을 아이에게 미안하다. 나도 내 아이에게 토끼 같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따라가고 받아들여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런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말 그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때’에, 그 사람의 ‘방식’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돕고자 하는 일이 또 진정 듣고 싶은 말이, 그 사람 안에서 흘러나오고 현실이 됩니다.” 이 책을 옮긴 신혜은 번역가의 말이다.
그 사람의 때에 그 사람의 방식으로 들어주려면 일단, 기다리자. '내가 여기 있어'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나의 온기가 느껴질 만큼 거리에 서서 기다려 주자. 아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마침내 아이가 입을 열면, 그때 우리의 반응이 무척 중요하다.
‘괜찮아, 그것쯤이야 뭐, 별거 아냐, 다들 겪는 일인 걸’ 하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서는 안 된다. 그저 끄덕여주기. ‘내가 듣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구나”
한마디면 된다. 더 이상의 붙임 말도 질문도 필요하지 않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하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낼 것이다. 아이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아이가 놀라면 같이 놀라고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으며 감정을 따라가 보자. 그리고 아이의 생각에 반응해 주자.
‘이렇게 하는 게 좋지,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라떼는 말이야’ 하는 설교 대신에 그냥 아이가 하자는 대로, 원하는 대로 반응해 주자. 아이가 꼭꼭 숨겨둔 마음 안을 훤히 내비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다리고 따라 하고 반응하자.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되어주자.
그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필수조건이 꼭 갖추어지면, 아이는 힘든 일이 있어도 툴툴 털어낼 것이다. 상처 받고 아파도 다시 돌아와 꿋꿋이 걸어 나아가는 용기 있고 단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