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하게 다그쳐 보기도 하고, 괜찮다며 달래보기도 하고, 엄마도 어릴 적 그런 때가 있었다며 이해해보려 하고, 끝나고 나면 달콤한 당근을 주겠노라며 구슬려보기도 하며, 아이를 축구 학원에 데려갔다.
막상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니,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아이는 이내 잘 적응했다.
새로운 축구선생님을 만나고 아이는 적응 중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선생님, 워낙 마음이 여린 아이는 그런 선생님이 무섭다며 축구 학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매일매일 공차기를 연습하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다녔다. 축구는 더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지만, 선생님이 무서워 움츠러드는 아이를 매일매일 달래느라 나는 지쳐갔다. 아이가 눈물 흘리면 흘릴수록, 나는 거대한 눈물 홍수 속에서 얇은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겨우 매달려 있었다. 축구 수업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이 안 무서웠다며 오늘은 괜찮았다고 말하는 아이. 그제야 고여있던 물이 흘러나가고, 나는 물바다 속에서 건져졌지만, 내 마음은 이미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분 200프로인 오늘 같은 날,
꼭 필요한 그림책,
남섬 작가의 『말려 드립니다』.
그림책 속에는 무엇이든 말려주는 건조대가 있다.
흠뻑 젖은 빨래를, 신발도 우산도, 말끔하게 말려준다.
그리고 파랗게 젖어 있는 엄마도. 말리고 싶은 건 뭐든지 말려준다.
나도 그림책 속 엄마처럼 건조대에 누워있고 싶었다. 아이의 눈물을 받아주고, 닦아주느라 속으로만 삼켰던 나의 눈물들, 그래서 더 축축해진 나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말려주는 건조대가 있다면 맘껏 울어도 되지 않을까? 마음껏 축축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건조대가 갖고 싶어 발을 동동 두드리며 그림책을 덮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그림책 속 건조대는 상상의 사물이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건조대는 가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는 그림책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마음이 외롭고 아프고 힘들면 그림책을 집어 든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끌벅적할 때면 그림책을 펼쳐 든다. 그림책 한 권이 모든 근심 걱정을 사라지게 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너무 무겁고 축축해서 도저히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없던 그때에, 조금 가벼웁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살짝 끌어줄 뿐.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그런 삶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림책을 보며 느낀다.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아이를 달래 가며 적응을 시키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여전히 걱정 투성인 나에게 그림책은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고민 중이고, 아이는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림책을 읽으며 축축해진 나의 마음을 바짝 말려본다. 또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 마음이 보송보송 해지도록 부채질을 해본다. 언젠간 그 두려움이 모두 말라 하늘로 날아가버리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