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수업을 듣던 큰 아이가 방에서 뛰어나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전자레인지 위에 종이쪽지를 올려놓고 갔다.
"엄마, 이거 나중에 봐~!"
Dear. mom이라는 글이 적힌,
네모 반듯하게 두 번 접은 작은 쪽지.
학창 시절, 매일 보는 같은 반 친구에게, 하루에 10통씩 쪽지를 써서 주고받곤 했었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던지,,,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의 쪽지는 캄캄한 미래를 외로이 헤쳐나가야 하는, 숨이 턱턱 막히는 나를 숨 쉬게 하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또 좋아하는 선생님께 아침마다 정성 들여 쓴 쪽지를 바나나우유와 함께 책상에 올려놓곤 했었다. 비록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었지만, 그래서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작은 쪽지. 딸이 건네준 쪽지를 보며 10대 시절, 쪽지 하나에 울고 웃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중에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딸아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슬쩍 펴보았다. 네모 반듯하게 접은 작은 쪽지에는 내가 엄마라서 먼저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소중하고 귀한 말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내가 필요하면 말해요, 달려가서 힘을 북돋아 줄 테니,,,"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딸아, 지금 네가 필요한데,,, 엄마한테 와서 힘 좀 줘~라고 외치던 내 맘이 들렸던 걸까? 요 며칠 복잡한 마음속, 머릿속 때문에 아이들에게 괜히 민감하게 군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냥 좋은 말로 하면 될 것을 날 선 언어들로 아이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상처 낸 일이 다시떠올라 아찔했다. 이리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무엇보다 쪽지에서 나의 가슴에 훅 들어온 한마디는, '사랑해요'라는 말이었다.
'엄마~ 사랑해'라고 늘 먼저 다가와 말해주며, 품에 꼭 안기어 자신의 온기를 나에게 전해주는 아이.
딸아이의 편지 끝에는 언제나 빠짐없이 '사랑해요'라고 적혀있다. 나는 그 글귀가 듣고 또 들어도,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고 참 좋다. 어렵고 힘들고 지친 일이 있어도 이 말 한마디면 힘이 불끈 솟는다. 어떤 보약보다 효과가 탁월한 명약 중의 명약이다.
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받고 뭉클한 맘에 나도 아이의 방문을 열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도 사랑해"
그렇게 방문을 닫고 돌아서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언제 사랑해라고 먼저 표현했지?
하루에 몇 번이나 할까? 사랑한다는 그 말.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나의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리고 늘 곁에 있는 남편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얼마나 표현하고 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리도 좋은 말을 왜 굳이 꼭 꼭 감추고 숨기며 모르는 척하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시시때때로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일흔이 넘은 아빠는 항상 사랑한다며 먼저 표현하시는데, 왜 나는 선뜻 '나도 사랑해'라고 답해드리지 못할까? 지금의 신랑에게 하루에 수백 번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고, 나의 사랑하는 OO오빠에게라고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랑한다고 표현한 게 언제였더라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가물가물 하다. 방긋방긋 웃으며 누워서 나와 눈을 맞추던 아이의 어린 시절에는 더 자주, 더 많이 사랑해라고 이야기해준 것 같았는데, 지금은 빨리먹어라, 빨리 씻어라, 빨리 숙제해라하며 왜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을까?
사느라, 이겨내느라, 견뎌내느라, 버텨내느라,
'사랑해'라는 달콤하고 몽글몽글 부드럽지만 어떤 무엇보다 단단하고 강한 힘을 가진, 흔하디 흔한 그 한마디를 잊고 산거 같아 아쉬운 맘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