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리랜서+맘입니다.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린다는 그 말

by 책닮녀
프리랜서는 자유롭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놀고 싶을 때 놀고, 내킬 때 출근한다. 혼내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면 큰일 난다. 통장 잔고는 언제 바닥날지 모르니 대비해야 하고, 퇴근이 없으니 항상 업무 모드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9년 차 프리랜서는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다.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봉현 지음/창비/p.20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흔히 집에서 노는 여자겠거니(근데 집에만 있어도 절대 놀지 않는데 이런 표현이 참 슬프기는 합니다) 생각한다. 막상 친해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을 하는 걸 알게 되고,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를 손으로 직접 키우면서도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부분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드라마 속 프리랜서를 떠올리며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리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라는 책의 첫 부분에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에 쓰인 것처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면 진짜 큰일 난다. 아마 내 일은 점점 사라지고 프리랜서 대신에 진짜 프리만 남을 것이다. 봉현 작가의 글을 읽으며 수없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완벽한 을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고충을, 또 없으면 없는 대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단정한 나를 가꾸어야 하는 마음가짐에 공감했다. 하지만 봉현 작가는 SOLO이기에 아직은 느껴보지 못했을 한 가지 더 어려운 순간이 프리랜서 맘에게 있다.



주로 아이들이 학교로 떠난 오전 시간에 강의를 하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줌 수업을 하며, 글을 쓰는 나를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한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학교 가기 전에 잠옷을 입고 밥을 차려주고 배웅인사를 하며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을 집에서 맞이하기에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하다. 뭐 그런 생활이 나름 순조롭기도 하고 안정감이 있어서 싫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잠깐 멈추었던 공개 수업이 대면으로 실시될 예정이라는 통신문을 받았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만 오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공교롭게도 수요일에 아이들의 공개수업 강의가 열린다고 했다. 프리 하게 일하는 프리랜서이지만 내 맘대로 강의요일과 시간을 바꿀 수는 없는 법, 더구나 개인 강의가 아닌 공공기관의 출강은 시간 변경이나 강사 대체가 어려워 사실상 공개수업 참석이 불가했다. 비교적 재택근무와 휴가 일정 조율이 편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남편에게 대신 참석해 줄 것을 요구했고, 남편은 웬일인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아이였다. 엄마가 와야 한다며, 아빠가 오는 것도 좋지만 엄마도 꼭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딸에게 엄마도 일을 하고 있고, 엄마의 일은 하루 종일 가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일이기에 아빠처럼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고 여전히 서운하기만 한 듯했다. 눈물까지 흘리는 아이를 보니 속상하고 또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의 일을, 프리랜서의 삶을 아이들도 존중해 주길 바랐으니까.



공개수업 날, 반차를 내고 공개수업에 가려고 집에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강의를 하러 떠났다.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의 공개수업에 참석하는 남편에게 말도 못 하게 고마웠다. 엄마가 아이들을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내가 갈게'라고 건넨 그 말이 너무너무 고마웠지만, 나는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만 건넸다. 남편이 하는 일만큼이나 내 일도 중요하기에. 인정받기를 바랐으니까.


아이가 내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는 엄마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었고,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떳떳하게 내 일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아직은 프리랜서라는 삶을 이해받기에는 우리 세상이 조금은 덜 성숙하지만 그럼에도 나도 봉현 작가처럼 단정한 나를 반복해 본다. 마감시한을 엄수하고 단정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차곡차곡 준비를 해 본다. 또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일이 단정한 반복에서 비롯되는 멋진 일임을 자랑스레 말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면 vs비대면, 어떤 스타일의 강의를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