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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25. 2022

함께 걷는 사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

얼마 전 떠났던 가족모임에서 어떤 순간이 가장 좋았냐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스치는 생각 속에서 양떼 목장을 떠올렸다. 그러자 남편도 양떼목장 정상에서 걸어내려오던 그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왜 좋았을까?





이번에 들렸던 목장은 예전에 방문했던 곳과는 다르게 버스가 있어서 정상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린 조카와 함께 떠나는 길이었기에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 30분 후에 양떼 몰이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정상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며 기사님께 물었다. 기사님은 양떼몰이 공연을 보려면 20분 뒤에 버스를 탑승하면 충분하다고 안내해 주셨다. 정상에 오르면 걷고 싶었던 나는 걸어서 양떼몰이 장소에 도착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50분은 걸릴거라는 말에 아쉬운 맘이 들었다.



정상을 한참 즐기던 중, 남편이 둘만 걷자고 했다. 진짜 안 맞는 듯 하면서도 이런 부분은 또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맛에 같이 사는 거겠지. 엄마와 아빠, 언니네 가족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걸음이 빠른 남편과 나만 정상에서부터 양떼몰이 공연장까지 걷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가로 막힌 것 없는 하늘은 우리를 두팔 벌려 맞아주었고, 물감으로 살짝 찍어준 구름은 방긋 웃으며 손 흔들어주었다. 아름다운 풍광속에 우리는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달콤상쾌한 추억을 만들었다.



양떼 몰이 공연 시간에 맞춰 가려면 바삐 걸어야 했기에,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기다렸기에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산책길을 걸었다. 그래도 바쁜 걸음 속에서 즐긴 건 다 즐겼다. 걸으며 하늘 사진을 찍고, 유명한 스팟에서는 포즈를 취하고, 자연스러운 뒷모습을 촬영하며 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30분 가량 걸었을 때즘 멀리서 양떼 몰이 공연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가니 버스가 세워준 장소보다 오히려 공연이 더 잘보였다. 보더콜리가 양떼를 모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뜻밖의 천진난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만난 듯 즐거웠다. 



걷다보면 뜻하지 않은 풍경을 마주한다. 차를 타고 다녔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공기, 강렬하면서도 황홀한 햇빛의 세기, 땅의 질퍽함, 그리고 걸을 때 살짝 등에 맺히는 땀방울은 내가 지금 살아있음을, 생을 건강하게 애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신랑과 함께 걸었기에 이 멋진 순간을 공유할 상대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걷는 행위만으로도 생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데, 사랑?하는(했던이 더 어울리려나요;;;) 사람과 함께 그 순간을 추억할 수 있으니, 아마도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여행을 떠난다면 몸이 허락해야겠지만, 날씨가 허락해야겠지만 걸어보면 좋겠다. 걷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 걸으며 열심히 움직이는 감각기관들의 자극을 모두 받아들이면 더 좋겠다. 나의 순간 순간이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 여기에 좋아하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 길이 남지 않을까?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걷자. 

혼자도 좋지만 그 사람, 이 사람과 함께라도 좋다. 맘 속에서라도 걷자.

오래오래 기억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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