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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Dec 11. 2022

캠핑은 역시 겨울이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낚아채듯이 차에 태웠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강원도 인제의 한 캠핑장. 드넓은 캠핑장에는 관리소 직원을 제외하고는 까마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산이 높아 이미 해는 넘어갔고, 덕분에 식어버린 땅에는 차가운 바람만 맴돌았다. 시간은 어느덧 4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짧아진 해가 언제 어둑어둑한 밤을 데려올지 몰라 마음이 급했다. 트렁크를 열어 등유난로에 기름을 부었다. 올해 봄, 꽃샘추위가 기승일 때를 마지막으로 창고에 고이 모셔놓았던 난로가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이었다. 만약 난로가 고장 났다면 우리는 다시 짐을 트렁크에 구겨 넣고는 두 시간 남짓 집을 향해 달려야 했다. 바람이 부는 곳에서 등유난로를 켜면 그을음이 생기기 때문에 텐트 피칭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을 거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폴대를 끼웠다.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2박 3일간의 우리 집을 꾸렸다. 텐트 설치를 마치고 심지에 등유가 촉촉하게 스며든 난로를 텐트 안으로 옮겨 버튼을 당겼다. 다행히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며 빨간 불길이 난로 안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해 첫 겨울 캠핑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8할은 날씨라고 생각하는 나는, 캠핑의 9할은 날씨라고 단언한다. 정말이지 캠핑은 날씨가 다 한다.(우중 캠핑은 정말이지 드라마에서만, 사진 속에서만, 유튜브 속에서만 낭만적이라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알 테다)  이제 캠핑을 다닌 지 햇수로는 4년 차, 캠핑을 다닌 횟수로는 40번 정도 된 중년 캠퍼로서 캠핑하기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겨울이라 말하고 싶다. 흔히들 사람들은 봄, 가을이 좋다고 한다. 또 캠핑의 꽃은 계곡의 물놀이라고 하며 여름을 찬양하기도 한다. 하지만, 봄은 꽃가루 테러에 밥 먹는 것 마저 힘든 적이 많았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들이치는 꽃가루 때문에 밖에 나가 정취를 즐기는 것이 어려웠다. 가을은 솔직히 꽤 좋은 편이지만 꽤 좋다는 사실 때문에 캠핑장에 사람이 너무나 많다. 여기에도 바글바글 저기에도 바글바글 덕분에 화장실은 냄새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때가 많다. 또 여름은 일단 덥다. 텐트를 피칭하기도 전에 트렁크를 여는 순간부터 그냥 덥다. 팔 한번 들었을 뿐인데 등줄기를 타고 떨어지는 땀 때문에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현타가 금방 찾아온다.




하지만 겨울 캠핑은 춥긴 한데, 진짜 춥긴 한데 근데 좋다.  추운 공기는 깨끗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캠핑장은 대부분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나무가 많다. 겨울에 찾은 캠핑장은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청소해 주듯 청량한 맛이 있다. 또 바깥이 추운 만큼 따뜻한 난로의 온기가 참 매력적이다. 난로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참 좋다. 난로 위에 주전자를 얹고 그 주변에 둥그렇게 가래떡과 고구마를 올려놓은 정겨움은 겨울 캠핑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더구나 겨울 캠핑은 춥다 보니 땀이 많이 나질 않아 옷을 덜 갈아입는다는 사실. 캠핑을 다녀와서도 빨래가 많지 않다는 게 주부 입장에서 참 좋다. 그 무엇보다 겨울 캠핑이 좋은 건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계절에는 사람들이 많아 화장실이며 개수대며 쉬이 더러워져 일요일이면 코를 막아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없어 한적한 환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역시 이번 캠핑도 금요일에 도착했을 때는 15개 남짓한 사이트에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있었다. 관리소 직원이 밤 9시면 불을 끄고 퇴근을 하는데 혹시 멧돼지가 내려오지 않을까 하고 무서울 정도였다. 덕분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떼창을 부르며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배드민턴 경기를 10세트는 치렀고, 해먹에 누워 하하호호 떠나갈 듯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2팀이 더 왔고,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퉁이마다 한 팀씩 떨어져 자리를 잡고는 각자의 여유를 즐겼다.




비록 철수하는 오늘은 텐트에 얼어붙은 얼음을 떼어 내느라 고생 좀 했지만, 난로에 넣은 등유를 모두 소진하느라 한참을 기다렸지만, 또 난로가 꺼지고 나서는 발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아서 다시는 겨울 캠핑 안 올 거야 하는 맘도 살짝 가져봤지만, 집에 돌아와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몇 안 되는 빨래를 모두 널고 나니 또 겨울 캠핑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다시 그 한적한 산골의 고즈넉함을 느끼고 싶어, 난로 앞에 모여 볼빤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 장갑을 끼고 코끝이 얼어붙으면서도 전세 낸 듯한 캠핑장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추억을 만들고 싶어 또 캠핑장 홈페이지를 기웃거려 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을 앞두고 지금 당장 떠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글이라도 이렇게 써 본다.




아, 가고 싶다. 겨울 캠핑.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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