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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ug 28. 2023

어쩌면 가장 쉬운 나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야말로 장롱면허였던 내가 아이의 등원을 위해 과감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서부터 어린이집까지 차로 15분 거리인데 버스를 타면 30분가량 걸렸기에, 효율적이고 편안하며 안전(?)한 등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아는 길이다 보니 큰 탈 없이 주행할 수 있었다. 차선 변경이나 유턴이나 회전은 그나마 잘했었는데, 큰 난관이 있었으니 그건 역시나 주차였다. 주차장에서 널찍한 양 끝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은 간격이 좁은 편이라 행여나 옆에 커다란 세단이라도 주차되어 있으면 당황하여 땀을 뻘뻘 흘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요, 경험의 산물이 아닌가. 조금씩 조금씩 주차하는 법에 익숙해져 갔고 웬만한 곳은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조심스럽게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어려워하는 구석 자리, 그것도 앞쪽에 조금 삐져나온 곳을 피해 차를 넣어야 하는 자리만 남아있었다. 뒤에 차들까지 줄줄이 이어져 있는 바람에 다른 자리가 나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주차해 보겠다고 차의 엉덩이를 이리 디밀었다가 저리 디밀었다가 하고 있는데, 그런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뒷 차는 빵빵 경적을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렇게 엉거주춤하는 바람에 몇 대가 더 길게 늘어섰고, 주차장 입구 도로까지 차가 줄지었다. 모두들 빠져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검은 양복에 하얀 셔츠를 입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장착한 남성이 등장하더니 나에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라는 신호를 했다. 누가 나타나서 대신 주차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단 누가 나타나긴 했다. 남자의 신호에 따라 왼쪽으로 두 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 다시 오른쪽으로 쭉 후진하며 다시 오른쪽으로. 몇 번의 지시를 수행하고 나서 내 차는 아무 일 없이 주차 선에 말끔하게 주차가 되었다. 당시 어린이집이 남편의 회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회사 보안요원이 차가 막혀있는 것을 보고는 빠르게 대처해 준 것이다. 그때 그 보안요원이 나누어준 환한 미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올해 봄날. 이제는 어디에도 그럭저럭 차를 집어넣을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평행주차도 그런대로 할 수 있고, 좁고 좁은 공간에도 홀로 주차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학원 상가 주차장이 매우 좁아서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곳인데,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게 너무 힘들어 비어있는 주차장을 보고 별생각 없이 주차를 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십여분 뒤에 나오니 텅텅 비어있던 주차장은 그야말로 만차행렬이었다. 더군다나 내 양옆 그리고 앞에도 커다란 SUV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혼자 힘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이러다가 긁어먹겠구나 하는 예감이 무섭게 올라왔다. 



차를 긁어 누군가를 귀찮게 만들고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들 바에는 한 번 쪽팔리고 마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옆차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OO부동산입니다'라는 연결음이 흘러나오다 중년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부탁드렸다. 남성은 아주 퉁명스럽게 알겠다고 하고는 잠시 뒤 주차장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자신은 정확한 주차 구역에 주차를 했는데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하냐며 투덜거렸다. 맞는 말이라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얕보듯 무시했고, 그럴 거면 운전을 하지 말라는 듯한 뉘앙스를 마구 풍겼다. 서럽고 짜증 났지만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을 계속 전했다. 여전히 위협적인 성난 얼굴을 하고는 차를 뒤로 옮겨주었다. 하지만 뒷 공간은 내가 한 번에 나가기에 조금 불안했다. 차를 옮겨주었지만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곧 그 중년남성이 달려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 어디선가!!! 희끗희끗 하얀 머리 할아버지가 인자한 웃음을 띠고는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어서 핸들을 왼쪽으로 다시 핸들을 풀고 다시 왼쪽으로를 반복했다. 그 할아버지의 수신호 덕분에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는 얼굴에 만연한 미소 덕분에 나는 별 탈 없이 주차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주차장을 나오면 잠깐 세워둘 곳이 없는 공간이다 보니 인사도 못하고 집으로 와 버렸다. 다시 그분을 뵈면 꼭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 했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그분을 뵙지 못했다. 



세상에는 수도 없는 나눔이 있다. 돈을 나누거나, 자신이 가진 물건을 나누거나 또는 재능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 봉사 단체에서 땀과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눔을 생각하면 그 많은 나눔 중에서 환한 미소의 나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를 향해 웃어주는 그 얼굴. 당황하고 막막한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그럴 수도 있다는 미소, 그리고 끝까지 도움을 주는 따스한 마음. 미소의 나눔에는 비교적 큰 노력도 큰 시간도 들지 않는다. 타인을 향한 관심 어린 눈길과 다정한 마음이 있으면 별 다른 재화 없이 건넬 수 있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의 인생에는 오랜 기억으로 남아 커다란 선물이 될 수도 있는 것. 나도 그런 미소를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다. 미소를 나누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덧+: 내가 나눈 미소가 돌고 돌아, 그 퉁명스러운 중년 남성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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