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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28. 2023

나는 남의 결혼식을 볼 때마다 운다

총량의 법칙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식에 갈 일이 극히 드물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니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결혼식에 초대받는 일이 매우 뜸해졌는데, 오랜만에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신랑 조카의 결혼식.



신랑의 조카라고 하지만, 신랑에게도 많고 많은 친인척 중 그저 어린 시절 마주친 조카들 중 하나고, 나로서는 결혼하고 나서 제대로 본 적도 없거니와 잔치집에서 스치듯 안녕 인사 나눈 사이라, 누가 누군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거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런 곳에 다녀왔다. '아, 저분이 그분이시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인사드렸지만, 또 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을, 내게는 그다지 큰 영향력이 없는 그런 결혼식이었다.



보통 예식보다는 식사에 주력하는 편이지만, 시댁 잔치라 어머님을 따라 예식장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예식장은 옛날 추억도 불러오고, 무언가 모를 뭉클함도 소환했다. 예식 전 상영해 주는 신랑신부의 커플 사진을 보니 알콩달콩 사랑이 샘솟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아주 잠시 그때 그 시절의 싱그러운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십 대 아이들 둘과 나란히 앉아있는 중년여성이 되어버렸지만.



곧 결혼식이 시작됐다. 세월이 변하여 '딴 딴따단~ 딴 딴따단'이라는 신부 입장의 전통 연주곡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신부 입장의 순간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는 휴 하는 숨을 내쉬며 한발 한발 내딛는 신부를 보고 나는 또 울고 말았다. 주르륵 주르륵. 혼자만 촌스럽게 우는 것 같아서 티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멈추지 않는 눈물을 아이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 왜 울어?"



사실, 나는 남의 결혼식을 볼 때마다 운다. 처음 내가 결혼하고 그다음 결혼하는 사람이 아가씨, 그러니까 남편의 동생이었는데 그날 아주 펑펑 울었다. 누가 보면 친자매인 줄 알고 오해할 정도로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울었다. 그러고 몇 달 뒤, 언니의 결혼식에서도 울었다. 그 후 친구의 결혼식에서도, 생판 모르는 남편 회사 동료의 결혼식을 볼 때에도 늘 울었다.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울어?'라는 질문을 받아서 도대체 왜 그럴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내 결혼식 때 울지 못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였고, 결혼하지 않은 언니를 둔 차녀인 나를 엄마는 조금만 더 있다가 결혼하기를 원하셨다. 완강한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은근한 엄마의 마음은 나도 알고 있었기에 미안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을 어쩌랴.(여기서 TMI는 사고를 친 건 아니라는 거) 그래서 더 밝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시댁에서도 결혼할 때 신부가 우는 건 보기 좋지 않다며 나쁜 곳에 팔려 가는 시대도 아닌데 펑펑 우는 게 납득이 안 된다고 말하셨다. 오히려 시댁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고. 이건 개인의 생각 차이겠지만 무튼 우리 시댁과 남편은 극극극 T형인 관계로 악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또 그런 시댁과 남편의 마음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울음을 꾹 참았다. 한번 울면 멈출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이 나를 지배했기에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나는 그날은 정말이지 독한 마음을 가지고 울지 않으려 애썼다. 울지 않기 위해 내가 고안한 방법이 있었는데 그건 정말 입이 찢어지도록 환하게 웃는 것. 억지로 웃으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면 눈물이 나오다가 들어가곤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의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는 것. 그렇게 나는 철없이 사랑에 빠진 그저 시집가는 게 좋은 신부가 되었다.



지금도 친척 어른들은 나를 엄마 아빠 생각은 별로 않는 마냥 결혼이 좋은 입이 귀에 걸린 어린 신부로 기억하고, 눈물을 보인 언니는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찢어지는 효녀 딸로 평하곤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 역시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나에게 조금은 섭섭했었다는 맘을 내비친 적도 있었다. 나는 그게 아니었는데, 엄마는 그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는데... 그때 억지로 참은 눈물이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어두운 객석에서 여전히 마구 방출되고 있다.



얼마나 결혼식을 더 다니면, 얼마나 더 울면 그때 내 감정이 총량의 법칙에 도달하여 그만할는지는 모르겠다. 행여나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시련이라도 당한 듯, 아니면 뻥 차이고도 잊지 못한 옛 애인의 결혼식이라도 온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중년여성이 있다면 모른 척해주기를. 그냥 이해해 주기를. 그리고 신부가 함박웃음을 짓고 인사하며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누군가의 감정을 속단하지 말기를. 마지막으로 결혼식에서든 어디에서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느라 자신의 감정을 애써 참지 않기를. 괜히 그러다 눈물샘이 고장 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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