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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an 18. 2022

바야흐로 귤의 계절, 귤은 좋다.

귤이 진짜 진짜 좋은 이유는?

어제 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눈을 보자마자 '쌓여라~ 쌓여라~ 쌓여라~' 주문을 외우고, 나는 '녹아라~ 녹아라~녹아라~'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음,,,,신은 내 편이 아니구나... 눈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더니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나가자고 꼬리를 흔들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함께 나갔다. 막상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니 내 맘도 무언가 몽글몽글 해졌다. 신나게 달려간 놀이터에는 하얀 눈송이 말고는 강아지도 친구들도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세상 어떤 친구 부럽지 않은 눈송이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바닥에 야트막하게 깔린 동네 눈을 다 끌어 모아 신나게 놀아 본다. 추운 곳에서 1시간 이상을 지키고 서 있으려니 몽글몽글 퐁신퐁신해졌던 나의 맘도 몸도 서서히 얼어붙었다.

아, 이럴 때는 전기장판에 배 깔고 누워 털 달린 담요를 덮고는 귤 한 상자 야금야금 까먹으며 뒹굴뒹굴하는 게 딱인데! 뜨끈한 바닥에 누워 새콤달콤 귤 알맹이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상상을 하며 집에 가면 귤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귤을 까먹으며 역시 귤이 최고야!라는 무언의 끄덕임을 하며 귤귤예찬을 시작해 본다.


바야흐로 귤의 계절,

귤은 좋다.


작고 탱글한 알맹이가 오밀조밀 빽빽이 모여 반달 모양의 탐스러운 자태를 하고 있다. 퐁신퐁신하기도하고 탱글탱글하기도 하고 생긴 것도 이중적인 매력을 띠고 있는데 맛도 그렇다. 입안에 살포시 넣으면 톡톡 터질 때마다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혀 양옆과 앞쪽 끝까지 고루고루 자극한다. 각자의 맛이 두드러지지 않게 때로는 새콤했다가 때로는 달콤했다가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크게 턱관절 운동을 하지 않아도 쑥쑥 넘어가는 것이 계속 계속 손이 가게 한다. 정말이지 한 상자 옆에 놓아두면 스멀스멀 사라지기 시작하여 하루 저녁이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맛있는 귤, 맛있어서 좋다.

귤은 휴대가 용이하다. 동그랗고 아담한 크기라서 어디든 귤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여행 가는 기차, 버스 안에서는 늘 귤 향기가 퍼진다. 칼로 깍지 않고 손으로 쓱쓱 껍질을 벗겨내 쉽게 먹을 수 있고, 누구 입에나 한 입에 들어갈 만큼 귀엽고 앙증맞은 사이즈를 하고 있으니 남녀노소, 장소불문 귤을 찾게 된다.

더구나 귤은 수분이 많아서 산행을 할 때는 물 대신에 귤을 먹기도 한다. 달콤한 당분과 시원한 수분이 땀을 뺀 우리의 몸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서 맛보는 귤의 달콤함이란~!(사실 산 정상에서는 컵라면이 더 맛난데,,,,,음,,,, 다음번엔 컵컵라멘예찬을 해 볼까)

'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옛말과는 달리 귤은 맛있는데 몸에도 좋다. 귤의 비타민c는 항산화 효과로 감기 예방에 탁월하고 면역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피부에 굳이 양보하지 않고 입속에 쏘옥 넣어도 피부미용에도 탁월하다는 사실! 피로를 없애 주는 구연산과 변비를 해소하는 식이섬유도 가지고 있으니 안 먹으래야 안 먹을 수가 없다.

귤은 버릴 것이 하나 없다. 축산계의 소가 있다면 과일계에는 귤이 있다. 귤의 껍질에는 베타카로틴이라는 항암효과를 띤 성분이 많아 껍질을 잘 말려 차로 우려내 먹기도 한다. 귤향이 그윽한 귤피차를 먹을 때는 귤탕에 퐁당 들어가 온천을 하고 나오는 느낌이다. 뼛속까지 상큼해지는 느낌이랄까?  더구나 이 껍질은 아이들과 놀기에도 딱! 누가누가 길게 껍질을 벗기는지, 토끼 모양으로 껍질 까기, 꽃 모양으로 만들기 등 시간 때우기에도 금상첨화다.

귤이 참 좋은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가성비가 좋다는 것. 사실 비싼 망고 하나 까면 아이들 주고  남은 갈비를 요리조리 쓱쓱 뜯어먹기 바쁘다. 샤인 머스켓은 씻다가 한 알이라도 세제가 담겨있던 그릇에 떨어뜨리면 부부싸움 날 정도로 비싸다. 체리나 딸기 같이 값비싼 과일들은 뭉그러진 부분만 내 차지가 될 뿐 맘 놓고 막 먹기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귤은 어떠한가? 일단 한 상자 사 오고 나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에 맘이 든든해진다. 안 먹어도 배부르지는 않지만 뭐 그 비슷한 느낌.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계속 계속 까먹는다. 배고플 때 먹어도 맛있고, 짭짤한 식사 후 먹어도 개운하게 맛있는 귤은 한 상자 풀어놓으면 온 식구 배부르게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물론 우리 집은 귤 한 상자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지만(이런 푸드파이터 신랑아~~) 그래도 다른 과일보다는 가성비가 매우 좋다. 이러니 귤귤예찬을 할 수밖에.


무엇보다 귤이 진짜 진짜 좋은 이유는 귤 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




그림책 『감귤 기차』에는 손녀 미나와 할머니가 등장한다. 서먹서먹 어색한 두 사람. 할머니는 미나에게 '귤 먹을래?'하고 건넨다. 미나는 귤이 뭐 그리 맛있겠어 싶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귤 바구니에서 찾아낸 감귤 티켓. 할머니는 기차표를 보고는 어릴 적 기차에서 먹던 귤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낸다. 그렇게 할머니와 미나는 귤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마음을, 서로를 나눈다. 할머니가 깜빡 잠든 사이 첫눈이 내리고, 미나는 첫눈이 내리는 날에만 탈 수 있는 감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 속에서 만난 낯익은 소녀와 한바탕 귤스럽게 놀다 돌아오는데.. 미나는 할머니와 왠지 모르게 가까워진 느낌이다.


중학생 시절, 귤의 계절이 되면 학원에 갈 때, 귤 두 개를 주머니에 쏘옥 넣고 갔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슬며시 '귤 먹을래?'하고 말을 걸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조금 서운해서 투닥투닥한 친구에게도 귤을 건네며 미안한 맘을 전하곤 했다. 친구뿐만 아니라 셔틀버스를 태워주시는 아저씨께도 감사하다며 '아저씨 드세요~'하고 두 손을 내밀었다. 좋아하는 선생님 책상에는 웃는 표시를 한 귤을 몰래 올려놓고 나오기도 했다. 맘을 표현하고 싶은데, 말로 하기 힘들 때마다 귤은 그렇게 새콤달콤한 나의 맘을 전해주었다. 할머니가 미나에게 내민 귤이 사랑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내 맘을 귤에 담았다. 무엇보다 귤이 좋은 이유는 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이 계절.

상콤한 내 맘을 담아 맘을 전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귤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추운 겨울, 얼어붙은 몸과 맘이 달콤하게 달아오를 수 있도록.

과즙미 팡팡 터지는 귤스러운 계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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