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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Jan 24. 2022

저,, 질문 있습니다만.

그림책이 나에게 묻는다. "언제 바다가 그리운가요?"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라고 물으면 응당 '산이지!!'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사람..

바로 나.


어린 시절 동네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게 바다였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가도 바다, 왼쪽으로 가도 바다가 포진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원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대학교에서도 1,2,3차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안주를 감당할 돈이 부족해진다. 그럴 땐 편의점으로 간다. 깡이 넘치는 새우를 한 봉지 사고, 캬악~ 쓰~ 소리 나는 맥주 캔을 몇 개 사들고는 모래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재학생들 사이의 공공연히 알려진 개구멍을 통과하면 1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바닷가. 그 바닷가의 작고 동글동글한 모래를 벗 삼아 젊음을 즐기곤 했다. 그렇게 나에게 바다는 지겹도록 일상적인 공간에 불과했다.

취직을 하고 수도권에 눌러살게 되면서 고향이 부산이라는 말을 할 때면, 사람들은 바닷가가 있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당최 무엇이 좋은지 도무지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지만 '아,, 네,,, 좋죠. 바다' 라며 대화를 얼른 마무리하곤 했다. 그저 매일 보는 그 무미건조한 푸르고 검은 바다의 한 장면이,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도 좋은 곳이라는 걸 , 타향살이 십여 년이 흘러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이 좋지만, 바다에 얽힌 추억이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지겨운 바다를 그립게 만들 때도 있다.

   



어린 시절, 피서는 늘 10분 남짓의 바닷가로 떠났다. 평상시에 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아빠는 쉬는 날에는 운전하는 걸 매우 싫어하셨고, 멀미가 잦았던 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멀리 여행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일 년에 휴가 몇 번 갈까 말까 하던 우리 가족이 그래도 꼭 찾았던 그 장소가 바로 광안리 바닷가였으니. 엄마는 늘 바닷가로 향하는 날이면, 지글지글 기름을 달구셨다. 뜨거운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자욱하게 내려앉으면 타닥타닥 무언가를 넣었고, 이내 팝콘 튀기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곤 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나오면 배가 고플까 걱정이 되었던 엄마는 비싼 음식은 사줄 형편이 못 되었기에, 손수 닭을 튀겨서 가져가셨다. 온 집에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게 참 별로였지만,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먹는 기름이 잔뜩 절여진 차가운 후라이드 치킨은 그 모든 걸 덮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꿀맛이었다.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추억의 맛. 안 먹어본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그런 맛. 



그림책 『바다가 그리울 때』에도 나처럼 바다를 떠올리면 엄마가 생각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엄마와 가족들은 바다에서 추억을 쌓았고, 함께, 따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러나 이제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없다. 아이는 바다가 그리 울 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 보고 바다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엄마와 함께 쌓았던 모래성, 함께 바라보았던 해와 별이 뜬 하늘. 바다는 주인공에게 추억의 장소이고,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자,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였음을 확인하는 곳, 슬픔을 견디어내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바닷가이지만 가끔씩 삶이 지치고 힘들면 바닷가 파라솔 아래에서 기름 샤워를 흠뻑 바친 통닭 한 마리를 즐기고 싶은 맘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잘한다고 하는데, 내 맘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내가 한 노력들이 헛수고로 돌아가 묵직한 돌덩이가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을 낼 때. 그래서 사무치도록 엄마가 그리워질 때면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바다가 그리워지곤 한다.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엄마의 사랑의 온도를 몸소 느끼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비록 바다에 직접 갈 수는 없지만, 400Km 떨어진 고향으로 냅다 달려갈 수는 없기에, 그럴 때는 그림책 『바다가 그리울 때』를 꺼내어 든다. 그리고는 주인공이 바닷가 사진을 보며 슬픔을 견디고 그리움을 느끼듯, 그림책을 넘기며 바닷가에 얽힌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고 슬픔을 견디어 낸다. 

나는 바다가 왜 그리울까? 

언제 그리울까?

바다에 얽힌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림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 그 질문의 화살표를 나를 향해 놓는다.

그 그림책이, 그 물음표가 나를 관통하고 오랫동안 머물러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오늘 또 그림책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저,, 질문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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