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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05. 2022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을까?

그냥 그런 엄마가 목표입니다.

설 연휴, 친정에 갔을 때였다.

거하게 술잔을 들이킨 신랑은 딸내미가 보고픈 마음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으로 갔다. 뽀뽀는 고사하고 볼이라도 한번 꼬집어 보고 싶어서, 딸이 놀고 있던 침대 위 텐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찰나.

딸과 쿵하고 부딪혔다.

뚝. 뚝....

아뿔싸. 원래 혈관이 약해 작은 충격에도 코피가 잘 나는 딸은 아니나 다를까 철철 코피를 흘렸다.

아빠는 좋아하는 맘에서 그랬지만, 그래서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잘 놀고 있는데 들어와서 훼방을 놓은 아빠가 미웠는지 딸은 엄마인 나에게만 다가왔다.

"나 엄마랑 잘래. 아빠랑 안 잘 거야."

연휴로 잠자리가 바뀌면 둘둘씩 짝을 지어 잠을 자곤 하는데, 딸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린 아빠에게는 너무 서운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여기서 잠자리 얘기는 왜 나와?"

"아빠랑 안 잘 거야."

쐐기를 박는 일침에 아빠는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화를 내는 아빠를 보며 딸은 또 상처를 받았다.



사춘기인 듯 사춘기 아닌 듯 사춘기 같은 우리 딸. 시간이 흐른 뒤, 딸은 나에게 속마음을 말했다. 아빠가 여전히 좋은데, 이상하게도 아빠의 말에는 화를 내게 된다고. 아빠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나는 딸에게 아빠는 너를 너무 좋아하는데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리곤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딸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너무 다행이야.

엄마가 내 맘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니까.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거야."

과분한 표현이었다. 언제나 시간에 쫓겨서, 일에 치여서 잔소리만 하고 보듬어 주지 못했는데, 오히려 사랑스러운 말로 나를 어루만져 주는 딸이 참 고마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나의 아빠는 참 성실한 분이셨고, 가정적인 분이셨지만, 가부장적이었고 엄마에게만큼은 다혈질인 기질을 늘 드러내는 분이셨다. 딸에게는 언제나 친절한 아빠였지만, 그런 아빠가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런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건 엄마의 한마디였다.

"괜찮아. 너는 잘할 수 있어."

"우리 딸은 참 야무지게 잘하지."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늘 긍정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

나를 키우는 말과 나를 이끌어주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곁을 내어주고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을 몸소 알려주셨다. 나의 어린 시절 엄마가 없었더라면 삐뚤어졌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엄마 덕분에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우리 엄마의 사랑이 나를 관통하여 우리 딸에게도 전해지는가 보다.





그림책 <엄마 자판기>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일까?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자판기 속 엄마처럼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주는 엄마, 나 대신 청소를 해주는 엄마, 자유롭게 놀아주는 엄마. 아니면 그저 바쁜 와중에 양육에만 몰두하는 그저 그런 엄마. 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 걸까?

잘 키울 필요가 없고 그냥 키우시면 돼요.
그냥 같이 있어주시면 됩니다.
엄마가 살아있으면 60%는 한 것이고요.
엄마의 상태가 좋으면 95%는 한 겁니다.
상태가 좋다는 것은 너무 우울하거나,
부부 사이가 너무 안 좋다거나,
너무 격한 기질을 가지신 게 아니라면 됩니다.



ebs육아학교 조선미 박사님의 말씀. 잘 키울 필요 없고 그냥 키우면 된단다. 그저 같이 있어주면 된다는 말이 정말 맞나 보다. 화를 내더라도 아이와 함께 있고 언제나 아이들이 맘 놓고 웃고 울 수 있는 울타리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냥 무럭무럭 잘 자라는 중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엄마 자판기> 속 아이도 엄마가 무엇이 되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거창한 곳에 놀러 가거나, 멋진 선물을 사주기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멋진 엄마가 되어야지, 그런 거창한 생각 때문에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야겠다. 그냥 지금처럼 같이 있어주면 아이는 그대로의 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테니까. 내가 우리 엄마에게 느꼈던 사랑의 마음을 나의 딸에게 나누어 주는 것처럼, 나의 딸도 내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먼 미래의 자신의 딸에게 있는 그대로 나누어주기를. 그런 따뜻한 맘을 가진 엄마로 살아가야겠다. 그냥 그렇게.



우리 엄마 덕분에, 딸 덕분에, 그리고 그림책 덕분에

내가 더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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