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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06. 2022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척을 하는 나에게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앙통처럼 그렇게


 ‘완벽(完璧). 완전할 완, 옥 벽’ 

흠이 없는 옥구슬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흠이 없는 뛰어난 것을 가리킨다.

나는 ‘완벽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나는 항상 일복이 많았다. 새벽에 태어난 소띠라서 그런지, 앞에 나서서 큰일을 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복이 많은 것도 좋았고, 나 또한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방송부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편집하고, 대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난 후, 마지막에 A부터 Z까지 정리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 역시 그걸 즐겼다. 나 대신 누군가가 그 일을 했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하기도 했다. 완벽한 게 좋았고 누군가가 완벽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좋았다.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요제 행사를 준비할 때, 사실 나는 아나운서 부라 무대의 동선과 흐름만 익혀도 되었다. 하지만 모든 총괄 상황을 확인하고, 준비하며,  무대를 더 꼼꼼하게 체크했다. 사람들은 내가 확인했으면 믿어도 된다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완벽할 거라는 말이 맘에 쏙 들어왔다. 

회사를 가서도 완벽에 대한 내 미련은 계속됐다. 꿈을 접고 몸을 담았던 은행은 사실 완벽 그 자체를 요하는 직업. 돈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작은 실수와 흠에도 예민해진다. 십 원, 일 원 단위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길 원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실수 없이 처리하는 성격에 사람들은 나와 잘 맞는 일이라고, 완벽하게 잘한다며 치켜세워주었다.


완벽을 갈구하는 나의 삶은 퇴직을 하고 나서도 여전했다. 집에서 조차도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아침밥 없으면 못 사는 신랑이기에 몇 시에 출근하든 일어나 밥을 차렸다. 퇴직 후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어릴 때는 엄마가 가르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엄마표 공부를 시작했다. 같이 책을 보고, 문제집도 풀고, 재미있는 책놀이도 했다.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울타리에서 자라온 아이들 역시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정도를 걷는 모범생 스타일로 컸다. 남편을 잘 내조하면서, 집안을 안정적으로 꾸려 나가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 인생의 의미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나에게 지인들은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렇게 나는 완벽해지려고 발버둥을 쳤다. 


어긋남 없이 살아오려고 참 많이 애썼다. 조금 흐트러져도 되는데, 한번 즘은 탈출했다가 돌아와도 되는데, 완벽해야 한다는 나의 벽을 깨부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있었다. 막상 돌아보면 내가 정말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단지 다른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려고 아등바등 살아왔을 뿐. 그 안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고 실패를 경험했다. 

고등학교 때는 편집해 놓은 테이프를 뒤 바꿔 재생하는 바람에 엄청난 방송사고를 내기도 하고, 대학생 때는 빠트린 대본 때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애드립을 이어가기도 하고, 은행에서는 몇만 원의 돈이 남아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CCTV를 수없이 돌리곤 했었다. 깜빡 듣지 못한 알람 소리에 남편의 아침식사를 놓칠 때도, 아이의 공부를 가르치다가 버럭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서툴고 실수투성인 순간들이 어쩌면 더 많았다.


그 실수와 실패가 있기에 지금의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내가 있는 것인데, 나는 왜 그렇게도 완벽하게 보이고 싶을까? 앞으로의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보이려는 강박으로 나를 옭아매지 말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네가 가장 완벽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대로 나를 펼쳐 보이고, 실수와 좌절의 순간에도 나를 드러내며 살자고 다짐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또다시 완벽의 칼날을 세우는 나를 발견한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해지려고 애를 쓴다.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여 스스로를 조이는 나를 만나는 날이면, 그림책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을 꺼내어 본다. 정성스레 가꾸고 기른 수박밭에 단 하나의 도둑맞은 수박. 그 수박 한 통 때문에 몸과 맘이 아파져 가는 앙통.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엉망이 되어 있는 수박밭을 바라보는 앙통의 표정이 나의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그래, 내가 설정한 틀 안에 나를 가두지 말고 

그냥 '덥석' 한발 내딛어 보련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발자취가 될 테니.

그런 모든 나날, 모든 순간이 쌓여서 더 완벽한 나로 우뚝 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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