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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21. 2023

본의 아니게 바질 중독

[바질키우기 4단계] 수확

바질을 키우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작은 것들이 자라 봤자...'였다. 외형만 보고 쉽게 생각했다. 바질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 자라기 시작하다니 급기야 몇 개는 '뭐야 이거 깻잎 아니야?' 할 만한 수준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발아를 시켜 옮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된걸까. 오이에 이어 자꾸 예상과 다르게 자라 버리니 한편으로는 무언가 잘못된 것인가? 의아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기쁘다. 자신이 손을 들여 키운 무언가를 키워냈는데 그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다는 건 그냥 기쁜 일이다.  


5월 31일 / 6월 7일 / 6월 21일


무엇보다 빠르게 수확하는 게 중요해졌다. 을지가드닝클럽에서는 여러 명의 멤버들이 날짜를 지정해 돌아가면서 물을 주고 있다. 자주 오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오지 못하는 멤버도 있다. 문제는 자주 오는 사람이 나였고 나에 비해 손이 큰 오이도령, 바질왕, K 등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마구 따가 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지? 한 번에 너무 많은 수확을 해서 앙상한 가지만 남으면 어떡하냐? 이렇게 따뜻한 인류애와 자연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내가 주로 수확을 하다 보니 수확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바질은 따도 따도 끝없이 자라났다.


바아아아질


예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따도 따도 바질이 줄지 않아 전 멤버들에게 바질 수확을 권했는데 특히 새처럼 달려들 것 같았던 오이도령이 웬일로 소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저한테 바질은 향이 좀 쎄서..." 오이 도령은 바질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바질도 모르지만 사람은 더 알 수가 없다. 오이 도령은 그냥 보기엔 독이 있는 풀도 씹어먹을 것 같은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바질은 물론이고 김치도 가려먹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다. 함께 모임을 한 지 1년이 다 된 뒤에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됐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그 세계는 깊고 또 깊다. 겪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바질페스토를 만드는 회원들

결국 나는 본의 아니게 바질 중독자가 됐다. 한국에서 바질 잎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매일 피자, 파스타를 먹을 순 없는데... 어리석은 생각이다. 바질은 파스타가 아니어도 웬만한 탄수화물과 대부분 조합이 좋다. 가령 편의점에서 파는 계란 샌드위치에 바질을 몇 장 넣어 같이 먹는다면 다소 밋밋할 뻔했던 계란 샌드위치는 훌륭한 맛을 내는 바질 계란 샌드위치로 탈바꿈한다. 샌드위치, 김밥, 볶음밥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음식에 바질을 넣던 나는 급기야 라면에까지 바질을 넣기 이르렀다. 인도인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바질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바질을 가장 빠르게 소비하는 방법은 역시 바질 페스토다. 바질 페스토는 생각보다 만들기 쉽다. 바질, 견과류(잣을 많이 쓰지만 캐슈넛, 호두, 아몬드 등을 넣어도 맛이 좋다), 치즈(그라나파다노치즈가 정석이지만 그냥 파마산 치즈를 써도 된다), 올리브유 그리고 믹서기만 있으면 누구나 멋진 바질 페스토를 완성할 수 있다. 다 쓰고 보니 상당히 거한 것 같아 조금 소심해지지만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두면 훨씬 더 다채롭게 바질+탄수화물 조합을 즐길 수 있으니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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